밀로셰비치 전격 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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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이상언 기자]발칸 전쟁과 코소보 지역 알바니아계 주민 인종청소에 앞장섰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사진)이 1일 새벽(현지시간) 세르비아공화국 경찰에 체포됐다.

지난해 10월 시민혁명으로 축출된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은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대량학살과 반인륜범죄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두산 미하일로비치 세르비아 내무장관은 "권력남용 및 부패혐의로 국내에서 사법처리할 방침이며 전범재판소에 인도할 계획이 없다" 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압력이 높아 그의 운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체포 과정〓지난달 30일 오후 세르비아 경찰이 베오그라드 시내 밀로셰비치의 빌라 주변에 배치되고 밀로셰비치가 체포됐다는 방송이 나오자 수백명의 밀로셰비치 지지자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밀로셰비치는 이날 자정 무렵 집 앞에 나와 건재를 과시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수시간 뒤인 31일 새벽 60여명의 특수경찰이 빌라 뒷문으로 총성을 울리며 진입했다. 하지만 밀로셰비치 개인 경호원들이 소총을 들고 격렬히 저항해 물러서야 했다.

이때부터 26시간의 대치가 계속됐다. 경찰은 사람을 보내 투항을 권유했지만 밀로셰비치는 "감옥에 가느니 차라리 죽겠다" 고 소리쳤다. 그러나 결국 1일 새벽 수발의 총성이 울리고 난 뒤 밀로셰비치가 경호원들과 함께 차에 실려나왔다. 밀로셰비치가 투항한 것이었다. 총성은 그의 딸 마리야가 아버지가 체포되는 순간 쏜 공포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밀로셰비치가)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결심한 것" 이라고 말했다. 유고 방송은 밀로셰비치 호송차들이 베오그라드 중앙교도소로 들어가는 장면을 방영했다.

◇ 체포 배경과 전망〓밀로셰비치를 체포하라는 여론은 유고 국내외에서 끊이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밀로셰비치를 권좌에서 축출하는 데 앞장섰던 조란 진지치 세르비아공화국 총리가 사법처리를 강력히 주장해왔다. EU와 미국 등 서방 국가들도 경제지원을 조건으로 밀로셰비치의 전범재판소 인도를 강권해왔다.

외신들은 미국이 31일까지 밀로셰비치를 체포하지 않으면 5천만달러 규모의 경제지원을 하지 않겠다며 몰아붙인 것이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유고 연방 대통령의 최종 결심을 이끌어냈다고 보도했다.

밀로셰비치가 체포됐다고 해서 반드시 전범재판소로 인도되는 것은 아니다. 세르비아 정부는 그를 국내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결국 밀로셰비치가 전범재판소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피폐한 경제를 살리는 게 급선무인 유고가 미국과 EU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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