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공관 의자에 5만 달러 놓고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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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곽영욱(70·오른쪽 사진) 전 대한통운 사장이 11일 법정에서 “한명숙(왼쪽 사진) 전 국무총리에게 직접 돈을 건넨 것은 아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곽 전 사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 전 총리의 뇌물 수수 의혹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총리공관에서 점심식사가 끝나고 5만 달러가 든 봉투를 내가 앉았던 의자에 놓고 나왔다”고 말했다. 재판장인 김형두 부장판사가 “한 전 총리가 봉투 놓는 모습을 봤느냐”고 묻자 곽 전 사장은 “봉투를 놓으면서 ‘미안합니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봤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 전 총리가 봉투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알지 못하고 누가 그것을 가져가는지도 못 봤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곽 전 사장을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하면서 “곽 전 사장이 미화 2만·3만 달러가 든 봉투 2개를 한 전 총리에게 건네줬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건네줬다’는 표현은 손에서 손으로 전달된 경우에 쓰는 게 적절하다”며 “재판부가 곽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작은 방이었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이를 못 봤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이날 재판에선 강압 수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곽 전 사장이 “자정 전에 조사가 끝났는데, 검사가 변호인을 보내고 오전 3시까지 면담을 한 적도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곽 전 사장은 “오전 5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죽고 싶었다. 가끔 오후에 소환하면 정말 고마웠다”며 “면담 시간엔 주로 정치인에게 돈을 준 게 있는지를 물어봤다”고 덧붙였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이태관 검사는 “면담 시간엔 손님용 소파에서 가족 면회도 수시로 시켜 주고 아플 땐 의사도 불러 치료받게 했다”고 해명했다.

곽 전 사장은 이날 또 “한 전 총리와 골프용품 매장을 함께 방문해 골프채 세트를 사 줬다”고 증언했다. “한 전 총리가 여성부 장관이던 2002년 8월 골프용품 매장에 함께 가 골프채 세트를 사 줬느냐”는 검찰의 물음에 이같이 답한 것이다. 그는 “그때 매장 직원이 한 전 총리를 ‘사모님’으로 불렀다”며 “높은 분을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직원을 혼내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검찰은 대한통운 서울지사에서 발행된 10만원짜리 수표 100장의 인출 기록과 이 수표가 골프용품점 계좌로 들어간 내역을 근거로 제시했다. 골프가방 등의 판매 내역 옆에 ‘한명숙’이라고 기재된 매장 장부도 법정에서 공개됐다.

최선욱·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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