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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출구를 나서면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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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반적으로 출구전략은 확장적 재정정책의 기조를 변화시키고, 급속하게 인하됐던 정책금리를 다시 인상하는 방안으로 인식된다. 두 가지 정책 모두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재정의 긴축시기와 긴축의 폭 그리고 금리인상의 시기와 폭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출구전략의 시기와 폭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란이 존재한다. 출구전략 조기 시행론자들은 위기극복 과정에서 시행된 확장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필연적으로 향후 자산가격 버블과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므로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선제적인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주로 학계나 연구계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반면 출구전략 신중론자들은 현재 상황은 금융위기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 갔던 경제가 정부 개입으로 간신히 숨을 쉬기 시작한 상태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섣불리 출구전략을 시행할 경우 살아나는 듯한 경제가 다시 응급실로 가야 하는 위급상황이 될 수 있으므로 출구전략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로 정부 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시각이다.

아직도 글로벌 금융환경의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상황이다. 누구도 경기의 중·장기적인 지속 회복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자산가격 버블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출구전략의 시기와 폭은 정책당국이 고독하게 내려야 할 결단이다. 더욱이 출구전략은 많은 경제주체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재정긴축은 건설업자들의 일거리를 줄일 것이고, 금리인상은 서민들의 이자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러한 이해관계자 요인까지 감안해 현재 출구전략은 다른 경제정책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정치행위로 변한 듯하다. 정치행위로 변모한 출구전략을 다시 과학적인 경제정책의 프레임으로 가져올 수 있는 정책당국자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독립성이 보장된 한국은행의 총재도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용기 있는 정책당국자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출구전략 이후의 한국경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 또한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아쉽다. 필자가 보기에 지금의 출구전략 논의는 미완성의 불완전한 논의다. 재정긴축과 금리인상은 경제를 출구로 오게 하는 출구전략이지만 출구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어떤 한국경제가 펼쳐질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한국경제는 감세를 주축으로 성장잠재력을 제고한다는 전략을 취한 바 있다. 감세정책은 공공부문의 규모를 축소하고 민간부문의 규모를 확대해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이 정책은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정책이다. 출구전략 이후에 한국경제는 다시 감세정책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증세정책을 도입할지 불명확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었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이었다. 위기 당시에는 외국자본이 단기간에 급속하게 빠져나가면서 안정된 거시지표를 가지고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다시 한국경제를 낙관하거나 한국원화의 가치상승에 베팅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의 자금유입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유입된 자금이 다시 한국경제를 급속히 이탈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위기를 예방할 수 있는 우리의 정책수단은 무엇인가? 또 그 정책수단은 얼마나 견고한가?

위기 이전에 우리는 어떻게 한국경제를 세계적으로 매력 있는 경제로 만들어 투자가 다시 살아나고 괜찮은 일자리가 끊임없이 창출되는 경제로 만들 것인가의 문제를 풀기에 골몰했었다. 이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개선하고 정규직에 대한 고용유연성을 확대하고, 금융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증대하고자 했다. 출구전략에 따라 출구로 갔을 때 한국경제가 다시 만나게 될 현실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얼마나 개선되어 있을까?

지금 논의되는 출구전략은 한국경제를 출구로 데려갈 뿐이다. 출구를 나서서 만나게 되는 세상이 화성일지, 금성일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다시 오염되고 희망 없던 지구로 돌아갈까 두렵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