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수정주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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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국 현대사의 수정주의 논쟁은 서구 수정주의 논쟁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우선 문패는 같다. 수정주의(revisionism), 즉 기왕의 학계 정설(정통주의적 해석)에 대한 문제제기의 해석이라는 점은 똑같다.

정통주의와 수정주의 사이의 대립구도 역시 다를 바 없다. 서구의 모더니티를 창출해낸 프랑스 혁명(1789년), 영국 명예혁명(1688년), 러시아 혁명(1917)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항용 '서구 3대 혁명' 이 자유.평등.박애의 가치를 신장시킨 인류사적 사건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서구 학계의 패러다임은 바뀌었다.

98년 역저 『프랑스 혁명의 이상과 현실』(역민사)등 서양 근대혁명사 3부작을 펴낸 김민제(51.홍익대 역사교육과)교수에 따르면, 요즘 서구 학계는 '혁명〓봉건체제를 뒤엎은 수단' 이기는커녕 '거의 무가치했다' 는 부정적 해석이 외려 강세다. 수정주의 학설의 등장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학계의 황제' 르페브르 교수의 혁명사관은 사회발전론이라는 지난 세기의 사회이념과 프랑스인의 애국심에 호소한 '낡은 해석' 이라는 지적 아래 영향력이 급속히 퇴조했다.

영국 혁명에 대한 해석도 휘그.마르크스 주의적 정통학설이 수정주의로 물갈이 됐다. 러시아 혁명 역시 자유주의적 해석이라는 수정주의 물결아래 휩싸였다. 이런 변화란 서구의 포스트모던 사학의 흐름과 보수화 추세 때문이다.

반면 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의 수정주의 등장은 해방.한국전쟁 이후 '정통사관' 이었던 보수주의적 관제(官製)사관에 대한 당연한 반발이었다.

문제는 '마음이 앞섰던' 한국사의 수정주의가 전상인 교수의 저작에서 보듯 새로운 실사구시사학의 '검증' 을 요구받고 있다는 점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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