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나태주 '들판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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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풀잎의 눈과

이슬의 입술을 가진 사람

바람의 숨결과

구름의 마음을 간직한 사람

그러나 들판 끝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언제나 앞 모습보다는

뒷모습만 보여주던 사람.

- 나태주(1945~)의 '들판 끝'

들판은 신비로운 땅이다. 인적 끊긴 들판이 더욱 그러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인데 누가 그렇게 조화를 부리는 것일까. 차가운 얼음이 녹아 강물이 풀리더니 황량한 땅에는 푸릇푸릇 초목이 자라고 화려하게 꽃들이 핀다.

갖가지 새들이 모여서 고운 노래를 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뜬다. 누가 그렇게 하는 것일까. 이 모든 조화를 보면 분명 누군가 살기는 사는 것 같은데(뒷 모습) 아무도 그의 얼굴(앞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추측할 수는 있으리라.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할 수 있는 존재라면 아마도 그는 '풀잎의 눈과 이슬의 입술과 구름의 마음' 을 가진 자라는 것을.

오세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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