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삐걱대는 자율형 공립고 교사초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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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차관은 지난해 10월 자율고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율고는 이명박 정부의 학교 다양화 정책 중 하나다. 일반 공립고에도 교사 초빙권과 교육과정 자율권을 확대해 사립 자율고에 뒤처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사립 자율고에 몰릴 학생을 공립 자율고에 끌어들이자는 뜻이었다. 교장에게 전체 교사 정원의 100%를 마음대로 데려올 수 있는 권한도 주겠다고 했다. 아이디어는 신선해 보였다. 이번 학기에 전국에서 19곳, 서울에서 7곳이 ‘자율고’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하지만 현장은 다르게 움직였다. 본지가 서울시교육청의 올 3월 ‘교원 정기전보 내용’을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우수 교사는 대부분 소위 ‘물 좋다’는 강남지역 학교로 몰렸다. <본지 3월 8일자 20면> 19명을 초빙하려던 서울 중구 성동고는 한 명도 모셔오지 못했다. 우수 교사들이 대부분 강북지역 학교를 외면한 것이다.

학교들은 예상된 결과라는 반응이다. 성동고 이덕기 교감은 “비강남권에 있는 교사도 틈만 나면 강남으로 옮기려 하는데 누가 지원하겠느냐”며 “애초에 서울 전역으로 초빙 대상을 정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초빙교사를 한 명밖에 뽑지 못한 원묵고(중랑구)의 박평순 교장은 “고생하는 만큼 가산점도 없어 시작부터 취지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과부는 9일 “교육청과 학교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교육 환경과 근무 여건이 열악한 곳에 교사들이 지원을 하지 않는데 왜 정책 탓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일부 교사들의 자세도 씁쓸하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학생들을 지도해 훌륭한 제자로 키우려는 소신보다는 강남지역에 안주하며 경력 관리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공교육을 살리는 데 교사 개혁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미국 워싱턴 DC의 교육 개혁을 이끌고 있는 미셸 리 교육감은 “교사의 의지에 따라 학생의 삶은 차이가 나고 학생을 가르치는 행위는 ‘예술(art)’만큼 신성하다”며 교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차관과 교육 관료들은 이 말을 되새겨봐야 한다. 말만 앞선 정책보다는 강남권 등 일부 지역은 교사초빙제를 제한하고 강북지역을 배려하는 섬세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김민상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