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강 페놀오염 10년] 환경의식 일깨운 '쓴 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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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국내 최대 환경오염 사고로 기록된 낙동강 페놀오염 사고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 각 부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새로운 환경정책을 도입했고 기업은 환경문제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환경전담 조직을 만들고 '환경경영' 개념을 도입했다. 국내 환경운동이 급신장하는 계기도 됐다.

◇ 정부.지자체의 환경정책〓1991년 당시의 낙동강 오염상태나 정수기술, 정부.지자체의 긴급 대응능력 등을 감안하면 페놀사고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낙동강 지천의 수질은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으로 50~60ppm(상수원수의 10배)에 이르렀고 정수장에서는 염소를 과다 투입해 오히려 수돗물 악취를 부추기기까지 했다.

페놀사고는 환경처 장.차관의 경질까지 불렀다.

수질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지자체는 4대강 수질개선 대책을 내놓았고 지난 10년간 투자를 계속했다.

김인환 계명대 교수는 "대구시는 재정형편으로 보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환경투자를 많이 했고 그 덕분에 낙동강 수질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고 말했다.

◇ 기업의 '환경 경영' 〓당시 페놀사고를 일으켰던 두산그룹에 대한 시민들의 불매운동을 지켜보면서 기업들은 환경문제에 잘못 대처할 경우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실제로 두산은 피해자와 지역사회에 2백20여억원을 배상.기부했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 황진택 박사는 "페놀사고를 계기로 두산환경센터.삼성지구환경연구소를 비롯해 현대.LG.한화그룹 등도 환경 관련 조직을 마련했다" 고 말했다.

90년 3천8백억원 수준이었던 기업의 오염방지 시설투자도 99년 2조1천7백억원으로 여섯배로 늘었다.

결국 두산전자는 뼈를 깎는 환경투자 끝에 94년 환경처장관상을 받는 모범기업이 됐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맞자 기업의 환경 관련 연구소와 조직은 대폭 줄고 일부는 아예 없어지기도 했다. 남은 곳도 활동이 크게 위축된 상태다.

◇ 시민과 환경단체〓시민들은 페놀사고 이후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됐고 환경운동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또 전국적인 환경단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환경단체들 사이에서 통합운동이 진행돼 '환경운동연합' '배달녹색연합' 등이 탄생했다. 기업의 환경단체 지원이 늘어난 것도 한몫을 했다.

대구=강찬수 환경전문기자

도움말 주신분〓김인환 계명대 환경공학부 교수, 노부호 대구지방환경관리청장,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황진택 삼성지구환경연구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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