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병원으로 들어간 예술, 환자 마음에 꽃을 피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투병중인 어린이 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제작된 미술품 ‘희망의 벽’(강익중 작)이 충남대병원 소아병원에 설치됐다. 병원에 입원 중인 환아들이 직접 참여해 호스피털 아트(The Hospital Art)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충남대병원 제공]

병원이 ‘확’ 달라지고 있다. 환자의 편의를 위한 서비스는 이젠 ‘고전’이다.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활동을 도입해 서비스의 품격을 한 단계 진화시키고 있다. 호스피털 아트(The Hospital Art), 이른바 병원 예술이다. 병원 안팎에 그림이나 조형물 등 미술작품을 설치하거나, 음악회·연극 등 문화공연을 펼치며 심신이 지친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마음의 위안을 넘어 감동 전달

분당서울대병원은 2003년 개원 때부터 일주일에 두세 차례 클래식 음악회와 가수 콘서트·국악 뮤지컬 등 총 800회 이상의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병원을 찾는 고정 팬이 있을 정도. 병원이 문화예술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건국대병원 지하 1층 ‘피아노정원’에선 평일 점심시간마다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환자와 내원객이 자연스레 이곳에서 음악 감상을 하며 자신이 환자임을 잠시 잊는다. 같은 층에 개설된 갤러리와 헬스케어센터에는 80여 점이 넘는 다양한 미술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대부분 유명 작가의 작품들로 그중에는 1억원을 호가하는 고가품도 있다. 병원 관계자는 시중 잠정가가 5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한다.

가장 많은 예술작품을 보유한 병원은 삼성서울병원이다. 총 643점의 조각·회화 등 방대한 미술품을 소장해 웬만한 미술관 이상의 규모를 자랑한다. 이 중 유명한 것은 병원 천장에 모빌처럼 설치돼 경쾌한 리듬감을 주는 ‘생의 오케스트라’. 작가 송번수씨의 작품으로 개화하는 꽃과 비상하는 날개를 형상화해 환자의 빠른 치유를 소망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종합병원급에선 서울아산병원·경희의료원·동서신의학병원·세브란스병원·광동한방병원 등이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병원에서 음악회·연극·뮤지컬·판소리 등 공연을 펼치거나, 그림·사진·조각 작품을 전시하는 일이 이젠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병원이 고급 문화인 예술을 환자 곁으로 끌어오는 이유는 뭘까.

첫째는 예술이 주는 감동이다. 예술은 작가의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것이다. 그래서 미술품 한 점,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환자의 고통과 메마른 정서를 촉촉하게 적셔준다.

미술작가 겸 뮤지션으로 국립의료원 NMC미술관장을 맡고 있는 허원실 치과 과장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병원에 들어서면 다른 환자의 고통이나 슬픔을 보고 덩달아 우울해진다”며 “특히 바깥 출입도 못하는 환자에게 미술작품 감상이나 공연 관람은 마음의 위안을 넘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가기 싫은 곳’이 ‘가고 싶은 곳’으로

둘째는 쾌적함이다. 소독 냄새와 하얀 가운, 그리고 차가운 병동은 가뜩이나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을 주눅 들게 한다. 병원이 가정과 다른 점은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은 곳’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

분당서울대병원 정진엽 병원장은 “환자들이 병원이란 삭막한 공간에 거부감이 있어 가능하면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음악과 전시를 즐기는 시간만이라도 환자들이 치료 중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쾌적함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예술품을 보고 듣거나 또 참여하는 행위가 환자의 치유를 돕는다는 것이다. 음악치료·작업치료·미술치료 등 예술을 통한 보완요법이 의료의 한 장르로 정착될 정도로 치료효과는 의학적으로 입증된 상태다.

외국은 병원예술 전문 단체도 활동

우리나라에서 병원에 예술을 접목하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은 20여 년 전부터 호스피털 아트 전문 단체가 생겨 병원을 순회하며 활동하고 있다. 미국 비영리재단으로 1984년 설립된 병원예술재단(The foundation for hospital art)이 대표적인 사례. 이 재단은 환자가 직접 참여해 화가와 함께 그림을 완성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 179개국 1500여 개 병원으로 퍼져나갔고, 90만 명 이상의 환자와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3만 점 이상의 그림을 만들어 냈다.

일본 또한 미술작가들로 구성된 비영리활동 법인 아트프로젝트가 10년 전부터 활동을 시작해 오사카와 효고 지역 병원 등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의 손길이 닿은 병원예술 공간은 지역주민에게도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병원에 예술을 접목하는 시도는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의료복지시설학회 양내원 부회장(한양대 건축학부 교수)은 “환자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병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조형물을 설치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며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 환자의 쾌적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병원가에 계속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주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