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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안 따지고 최고의 교육...글로벌 인재들이 모여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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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08면

네덜란드는 역사적으로 북유럽 미술을 인도한 중심지였다. 또 17세기의 미술시장을 처음으로 형성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일찍부터 문화정책을 세웠고, 문화자산의 가능성에 다양한 투자를 해왔다. 반 고흐 미술관, 스태들릭 미술관, 라익스 아카데미, 몬드리안 파운데이션 등 비중 있는 미술관을 중심으로 유럽의 주요 예술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문화강국 유럽, 정책 뜯어보기 <5> 큐레이터 양성소, 네덜란드 드 아펠(De Appel)

특히 눈길을 끄는 기관이 1975년 설립된 드 아펠(De Appel)이다. 드 아펠은 당시 예술계에서 그리 인정받지 못했던 퍼포먼스 장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관의 이름이 ‘사과’라는 것도, 성경 속 아담의 사과나 그리스신화 속 파리스 왕자의 사과 등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는 풍부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그런 예술세계를 발굴해 소개한다는 설립 취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시각적 언술력(Visual literacy)’이라고 하는, 작품을 해석하고 문맥화하는 작업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전문가가 가르치는 현장교육
이런 기관이 없었던 유럽에서 드 아펠은 금방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한 예술 한다는 작가, 이론가, 비평가 등이 이곳으로 모였다. 전설적인 퍼포먼스 작가들인 마리나 아브라모빅, 로리 앤더슨, 크리스 버든, 비토 아킨치 등의 작품이 처음으로 이곳에서 소개됐다. 또 드 아펠은 일 년에 여섯 번의 국제 현대미술 전시를 소개하는 아트센터로서, 국적에 상관없는 전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국과도 2003년 교류전을 했다.

하지만 드 아펠의 브랜드가 더욱 중요하게 된 것은 86년부터 디렉터를 맡아온 사스키아 보스(Saskia Bos)가 94년 시작한 큐레이터 트레이닝 프로그램(일명 CP) 덕분이다.
당시 큐레이팅 공부라 하면, 대부분 미술사학에서 조금 더 나아간 미술관학에서 주로 다루어지고 있는 학문적 접근이 전부였다. 93년 영국 로열칼리지 프로그램, 96년 런던 골드스미스대학에서 큐레이터 과정이 대학원 과정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드 아펠의 프로그램은 이런 대학원 과정과는 크게 달랐다.

단지 공부하고 싶다고 지원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지원자 대부분은 이미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젊은 큐레이터들이었다. 전문가들이 그들의 제안서를 보고 심사를 거쳐 6명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프로그램은 학기제가 아닌 전문인을 위한 9개월간의 특별 트레이닝 프로그램이었다. 어떤 것을 배운다, 가르친다라는 입장보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비엔날레 디렉터들이나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직접 나와 강의 및 토론을 이끌어 가며 미술의 담론을 서로 새롭게 ‘만들어 간다’는 시각으로 진행됐다. 수많은 비엔날레와 전시를 함께 다니며 보는 현장 훈련이 주된 내용이었고, 그 6명은 공동으로 마지막 전시를 드 아펠에서 선보이며 훈련과정을 마치는 것이다.

이들은 약 4000유로(약 800만원)의 수업료를 내야 하지만, 9개월간 방문하는 수많은 비엔날레와 유럽, 미국, 아시아 리서치 여행을 생각하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암스테르담 정부는 큐레이터당 상당한 재정지원 및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선택과 집중이라고 해야 할까.

토론 통해 시대 이끌어 갈 담론 함께 만들어
모두 자국 학생도 아닌데 이렇게 투자를 하고, 그들의 경력을 만들어 주는 일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사실 이것이 드 아펠을 오늘날 큐레이터계의 중심센터로 만들게 된 가장 중요한 성공의 비결이다. 단기적 시각과 결실을 바라는 단편적인 국제화가 아닌, 어떤 분야의 최고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그들 나라에 있다는 것이 글로벌화 시대 진정한 ‘글로컬’의 의미이자 중요성이다. 드 아펠이 네덜란드 미술계의 국제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CP를 운영하고 있는 헨드릭 포커츠와는 이렇게 말한다.

“이곳 분위기는 함께 일하는 동시대 동료의식으로 충만합니다. 튜터들도 모두 큐레이터 출신인 데다, 현재 유럽의 대학이나 미술관에서 일하는 현직 전문인들이지요. 국내외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드 아펠을 통해 유럽의 가장 진지하고 흥미 있는 미술 담론을 함께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내용이 있는 곳에 좋은 작가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여기는 암스테르담이긴 하지만 진정으로 글로벌한 장소입니다.”

사실이 그렇다. 암스테르담에는 좋은 작가들이 모이고 있다. 좋은 큐레이터들과의 만남이 있고, 그들의 국제적인 활동은 모인 작가들과 함께 자라가며, 국제 미술계의 지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직접적인 네트워크 파워를 만들어 내는 곳이 된 것이다.

일반인과 소통하는 미술 지향
드 아펠 출신의 90여 큐레이터들이 그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또 하나의 헤게모니를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헤게모니가 만들어내는 함정, 즉 그들이 좀 더 관심 있는 혹은 선호하는 미술의 형식과 모습이 있기에 어쩌면 다양한 미술의 모습과 형식을 배제하는 오류나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아펠식이다’라는 미술전시기획 형태가 형식화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고, 이 또한 진부해져 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2006년부터 신임 디렉터로 일하기 시작한 앤 드미스터도 이 부분에 주목했다. 그는 훈련 프로그램을 확 바꿨다. 그전 프로그램이 이론수업과 담론수업에 집중했다면 드미스터는 문맥 해석을 통한 큐레이팅(Context Responsive curating)을 제시했다. 6명의 큐레이터들은 ‘화이트 큐브’(전시관)를 걸어나와 자신들이 정한 특정 장소를 전시장으로 만드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같은 형식의 전시를 기획하도록 요구받았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큐레이터들은 단지 한 시대의 미술을 연구하는 것뿐 아니라, 작가와 작품을 다양한 문화적ㆍ사회적 문맥에서 생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인들과 멀리 떨어진 미술이 아닌, 그들과 소통하는 장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드 아펠은 올해 2월 올드 보이스 스쿨(Old boys School)이라는 장소에서 새로 이사를 했다. 더욱 커진 전시장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세워 미래 미술계를 이끌고 갈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있다.

이렇게 특정 분야의 전문인을 키워내는 시스템을 보면서, 지속적 정책의 필요성과 그 가시적인 결과를 새삼스럽게 되새겨 본다. 미술은 단지 미술관에 있는 작품이 아니고, 많은 창조적 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원천적이고, 기본적인 영감의 핵심이다. 새로운 문화 및 상품에 갈급하는 이 후기 구조주의적 정보사회에서 미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런던 골드스미스대 미술사(MA), 시티대 예술행정(MA)을 공부하고, 지난 10년간 유럽과 아시아에서 다수의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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