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미국의 이라크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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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과 영국은 지난 16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외곽에 대해 전격 공습을 감행한 데 이어 22일 북부지역에 두번째 공습을 가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초계비행을 위협하는 방공망 제거를 위한 통상적인 작전이라고 강조했지만 이라크에 대한 경고 성격이 강하다. 외신은 부시가 사담 후세인에 대해 '명함' 을 건넸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번 작전을 성공이라고 자평(自評)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미 국방부의 한 관리는 정확도 면에서 볼 때 B- 아니면 C+ 학점이라고 평가했다. 첫 공습에서 미.영 공군기가 투하한 스마트탄들은 대부분 목표물에서 빗나가 25개 목표 중 겨우 8개를 파괴하는 데 그쳤다.

스마트탄이 이름만큼 스마트하지 않음은 1999년 코소보 내전에서 이미 드러났다. 당시 스마트탄의 명중률은 40%였다.

국제사회의 반응도 극히 비우호적이다. 러시아.중국.프랑스 등은 미국의 '도발' 을 비난하고 나섰으며, 아랍권 국가들에선 반미 연대(連帶)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주장해온 이라크에 대한 유엔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對)이라크 강경론자들로 구성된 부시 외교.안보 팀으로선 시작부터 호된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정책은 지지부진하다. 유엔 무기사찰은 98년 12월 이후 중단된 상태며, 경제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

경제제재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독재자 후세인이 아니라 이라크 국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라크 국민은 한달에 10달러로 연명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의 경제제재로 이라크 국민 1백만명 이상이 추가 사망한 것으로 집계돼 있다.

역설적으로 경제제재 덕분에 후세인의 권력기반은 더 강해졌다. 식량.의약품 구입 등 인도적 이유로 유엔이 이라크에 허용한 석유수출로 얻는 연간 외화수입 2백4억달러 중 상당 부분이 후세인 수중에 들어간다.

또 시리아.터키.요르단.이란을 통한 석유 밀수출로 매년 10억달러 이상 벌어들인다. 국제시장에서 이라크산(産) 원유를 싼 값에 사들이는 유령회사들 얘기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미국은 경제제재를 강화할 계획이지만 다른 나라들이 얼마나 따라줄지 의문이다. '이라크해방법' 에 따라 쿠르드족.이슬람 시아파 등 반(反)후세인 그룹을 지원하지만 세력이 미약할 뿐 아니라 언제든 반미(反美)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미국은 처음부터 후세인을 제거할 뜻이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했듯이 미국은 더 큰 적(敵)인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후세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희망사항' 은 후세인의 건강 악화다. 하지만 후세인은 얼마전 대중집회에 모습을 나타내 건재를 과시했다. 이대로 가면 걸프전 최후의 승자는 후세인일지도 모른다. 미국 입장에서 이라크문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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