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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시 성폭행은 엄연한 범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전범재판소는 22일 1992~1993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이슬람교 여성들을 성폭행한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 3명에 대해 최고 28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열린 도쿄(東京)전범재판소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에서는 성폭행 문제를 취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상기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제까지는 전쟁을 치르면서 군인들이 적국(敵國) 여성에 대해 강간 등 성폭행을 하더라도 이것을 승리자의 전리품으로 여기거나 전쟁의 광기에서 빚어진 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최소한의 자기 권리' 마저 인정하지 않은 국제사회의 낡은 인식이었다.

이런 잘못된 통념을 깨뜨리고 전쟁 중에 일어난 성폭행을 반인륜 범죄로 규정한 헤이그 전범재판소의 판결을 우리는 열렬히 환영하며 차제에 일본 정부도 정신대(挺身隊)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피해를 본 나라의 여성을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들은 지난 10여년간 일본 정부에 정신대 문제에 대한 사죄와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여성을 성노예로 강제 동원한 사실을 전쟁 범죄로 인정하거나 책임자를 처벌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사설재단을 통한 보상금 지급으로 희생자들의 입을 막으려 한 것이 전부다.

여성에 대한 가장 잔혹한 인권유린 행위였던 정신대 문제는 인류사회에서 반복돼서는 안될 전쟁 범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96년 쿠마라스와미, 98년 맥두겔 유엔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의 보고서 등 책임자 처벌과 국가 배상을 명기한 국제사회의 거듭된 권고를 일본 정부는 '모르쇠' 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은 안된다. 더욱이 유엔인권소위는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에게 '군 위안부를 비롯한 현대판 성노예에 관한 결의안' 에 따른 일본 정부의 군 위안부에 대한 법적 배상 이행 여부를 올해 제53차 유엔 인권소위에 보고토록 요청해두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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