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메인스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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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도와 당선에 기여한 이영작 박사가 최근 펴낸 저서 『대통령 선거전략보고서』에 패자인 한나라당도 적지않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이긴 쪽의 선거전략이 상세히 담겨 있으니 진 쪽에서 관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역시 우리 전략에 빈틈이 많았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이상의 교훈을 얻었다" 고 독후감을 말했다.

이 책에서 李박사는 '집토끼 산토끼' 론(論)을 폈다. 199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가 집토끼(진보성향 표)를 방치하고 산토끼(보수성향 표)를 좇음으로써 성공했다는 예를 들었다. 대체로 좌파성향인 동성연애자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제스처를 구사해 유권자가 밀집한 중간파와 보수층의 호감을 샀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감하게 산토끼(보수층)를 잡으러 가야 합니다. 집토끼를 약간 잃을 수 있지만 중간파가 있는 표밭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고 李박사는 김대중 총재(당시)에게 건의하고 있다.

97년 대선에서 39만표 차이로 낙선한 이회창(李會昌)후보는 殮?주한 일본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메인스트림' 론을 제기했다. 李총재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중도적인 보수층' 을 우리 사회의 메인스트림(主流)으로 규정하고 "정권을 교체할 필요성을 느낀 메인스트림이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당선시켰다.

나는 메인스트림의 이런 의사를 읽지 못했기 때문에 대선에서 패했다고 생각한다" 고 반성했다. 물론 "다음번에는 메인스트림이 현정권을 심판해 새 정권을 만들어주리라 본다" 는 기대도 피력했다.

李총재가 말한 메인스트림을 고려대 함성득교수(대통령학)는 '중도 성향 표(median vote)이론' 으로 풀이했다. 클린턴의 선거참모 딕 모리스가 즐겨 써먹은 이론이라니까 이영작 박사의 '토끼론' 과도 통한다. 대선에서는 진보.보수층 표 중 어느 한쪽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으므로 자기편 표를 먼저 확보한 뒤 중도.상대방 표 사냥에 나서야 한다는 이론이다.

"李총재가 안정속의 개혁을 추구하는 보수층에게 '내가 여러분의 대표' 라고 치고나간 것" 이라고 咸교수는 해석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선거는 진보.보수 아닌 지역구도를 중심으로 토끼의 종류가 나뉜다는 점이 문제다. 정책이고 이념이고 맥을 못춘다. 정말 다음 대선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노재현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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