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의 선택] 호남석유화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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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석유화학산업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바로 중국 때문이다.

사실 석유화학만큼 경기에 민감한 업종도 없다. 가게에서 흔히 보는 제품 포장재나 건물에 들어가는 PVC 파이프 등은 모두 석유화학 제품을 원료로 만든다. 경기가 나빠져 건설 사업과 소비가 줄면 석유화학 산업은 직격탄을 맞는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아직 선진국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지금, 석유화학도 침체에 빠져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석유화학산업은 이미 지난해 호황에 접어들었다. 업계에서는 2014년까지 호황이 계속되는, 이른바 ‘빅 사이클(Big Cylce)’을 맞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화학 업종이 훨훨 나는 이유는 중국에 있다. 폴리에틸렌(PE)을 보자. 이는 각종 플라스틱의 원료로, 석유화학 제품 중에 이곳저곳에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다. 이 PE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중국의 무서운 내수 소비 증가세 때문이다. 2009년 중국의 PE 소비는 전년보다 37.5% 급증하면서 전 세계 수요의 22%를 차지하게 됐다.

앞으로도 중국의 PE 수요는 급증할 전망이다. 지금 중국과 경제 수준이 비슷했던 1980년대 후반 한국이 그랬다. 88년 올림픽을 전후한 5년(86~90년) 동안 경제는 연평균 10%가 넘는 속도로 성장했다. 이 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600달러에서 6400달러로 늘었다. 그러면서 1인당 PE 수요는 1년간 10㎏에서 20㎏으로 두 배가 됐다.

지금 중국이 당시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내수가 급증하고,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0%를 넘나든다. 2009년 현재 1인당 GDP는 3800달러이고, 1인당 PE 소비는 연간 12㎏ 정도다. 80년대 말 한국의 판박이다.

앞으로도 중국은 한국과 비슷한 경로를 밟을 공산이 크다. 2009년부터 5년 사이 PE 수요가 두 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에서 수요가 전혀 늘지 않아도, 중국 하나만으로 석유화학산업은 호황을 누릴 여건이 형성된다.

중국을 중심으로 수요가 급증할 것이지만, 공급은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동과 중국이 최근 공장을 많이 늘리기는 했지만 북미와 유럽은 설비가 낡아 가동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수요는 느는데 공장은 적으니, 한국 석유화학 업체로서는 큰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 중에서도 최대의 순수 화학 업체이며, 재무안정성이 높은 호남석유화학을 꼽아본다. 이 회사는 2003~2008년 이른바 석유화학의 ‘수퍼 사이클’ 때 돈을 벌어 KP케미칼 등을 인수합병(M&A)하면서 성장했다. 주당순자산(BPS)이 수퍼 사이클을 맞은 5년 새 3배 넘게 성장했다.

2009~2014년의 ‘뉴 빅 사이클’에서도 비슷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사상 최초로 영업현금흐름(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차감 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을 것이다. 이렇게 높은 현금 창출력을 바탕으로 또 한번 대규모 M&A에 뛰어들 채비를 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남석유화학은 지난해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2018년 매출 38조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M&A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목표다.

당분간 가파른 성장이 예상되지만 호남석유화학의 2010년 추정실적 기준 주당순이익(PER)이 5배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 평균(10배)의 절반 정도로 저평가된 상태다.

유영국 KTB투자증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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