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혜화동에 대한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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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것은 돈암동 용문중학교에서 한강 건너 말죽거리로 송충이를 잡으러 갔을 때였다. 나무젓가락으로 송충이를 깡통 속에 잡아넣는 게 다소 끔찍했지만, 친구들과 한여름 산바람을 함께 쐴 수 있었던 것은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몇 년 전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영화를 만든 유하 감독에게 같은 시·공간을 체험한 세대적 공감을 크게 느끼기도 했다.

독일과 미국에서 공부한 7년을 제외하곤 이제까지 서울을 떠나 산 적은 없다. 시인 김수영이 ‘거대한 뿌리’에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했듯이 나 역시 이제는 서울 어디를 가든 자연스레 과거를 떠올리며 현재를 둘러보게 된다. 그래서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고 김수영이 노래했듯이, 내 자신의 삶과 함께해 온 서울의 풍경들을 돌아보며 무채색 서울의 유채색 패러다이스를 꿈꿔 보기도 한다.

감상적 이야기가 길어졌다. 다른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6월 2일 치러질 지방선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이제 3개월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도 선거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세종시 논란이 모든 정치적 이슈들을 블랙홀처럼 끌어들이고 있는 탓이다. 세종시 문제의 본질이 균형발전에 있음에도 정작 분권과 자치를 다루는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아이러니다.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는 것을 물론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선거가 과열돼 생산적 토론 없이 네거티브 전략만 넘쳐흐른다면 정치적 불신을 가중시킬 뿐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정치 현실을 지켜보면 정치적 무관심이 갈수록 확산돼 온 것 같아 안타깝다. 2007년 대선 투표율(63.0%)과 2008년 총선 투표율(46.1%)을 돌아볼 때 2006년 지방선거 투표율(51.6%)이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지방선거의 의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관한 비전과 정책 대안을 비교하고 선택하는 데 있다. 서울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용산 참사로 나타난 재개발 사업에서 초·중학생 무상급식에 이르기까지, 교통체계 개편에서 고령인구 일자리 창출에 이르기까지 시민들 실생활에 밀착한 이슈들에 대해 중앙정부와는 다른 차원에서 지방정부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이 결코 적지 않다.

도시 사회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거주하는 곳은 ‘공간(space)’과 ‘장소(place)’의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낯익고 따듯한 장소가 아닌 낯설고 메마른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게 오늘날 도시 생활의 현실이다. 생존과 경쟁의 ‘공간’으로부터 생활과 공존의 ‘장소’로의 전환이야말로 도시가 꿈꿔야 하는 유토피아이며, 이 유토피아로 가는 실현 가능한 길에 대한 생산적 논쟁이 바로 지방선거의 본령을 이룬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번 지방선거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정책적 이슈들에 대한 충분한 토론 및 검토 없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선거 막바지에 가서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정책집이 발표되고 역시 별다른 차이 없는 TV 토론이 몇 번 이뤄진 다음 어느 날 기표소 앞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방선거가 이렇게 치러지는 한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낯익은 장소가 아니라 결국 낯선 공간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길의 하나는 미아리에서 혜화동을 거쳐 한남대교로 가는 길이다. 장충동 장충고등학교를 다닐 때 이 길로 통학을 했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더러 이 길을 갈 때면 오래전 동물원이 부른 ‘혜화동’이 떠오른다. 삼선교를 지나 혜화동으로 들어서면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 올 것만 같기도 하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옛 친구를 찾아가는, 그런 온기 있는 서울을 실현하고 싶은 것이 나만의 꿈은 아닐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