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위험 심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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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89년 1월 미국 환경보호국은 사과에 사용되는 농약 알라의 다미노자이드 성분에 대한 암 유발 확률을 발표했다. 발암위험이 1백만명당 어른은 1명, 어린이는 9명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간환경단체인 국가자원방어위원회는 환경보호국의 데이터를 자체 분석해 6세 이하 어린이 4천2백명당 1명꼴로 암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CBS방송의 '60분' 프로그램이 이를 보도하자 전국적으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학부모들은 스쿨버스를 쫓아가 딸의 도시락에 든 사과를 빼달라고 소동을 피웠다.

그러자 3월에 '60분' 은 위험이 과장됐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방영했다.

미국 버클리 대학의 환경과학연구소장 브루스 에임스는 "유기 농산물을 사기 위해 1마일 더 운전하는 것이 오히려 암에 걸릴 위험이 더 커진다" 고 지적했다.

권위 있는 과학잡지 사이언스의 사설은 국가자원방어위원회가 과학적인 정보를 과도하게 단순화했으며 이를 언론이 과장해 선전했다고 비판했다.

미국 과학계에선 알라의 위험이 과장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라를 사용한 농산물을 먹을 생각이 없다.

한국의 광우병 파동을 보자. 소나 사람에서 광우병이 발병한 사례는 없으며 우리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정부와 전문가가 아무리 홍보해도 쇠고기 소비는 줄어들고 축산농가는 울상이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부산물을 섭취한 경우에만 위험이 있다고 강조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위험심리학이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선택한 활동(흡연.운전.스키 등)에서 오는 위험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평생 흡연을 하면 수명이 10년 가량 줄어든다.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하루 평균 30여명에 이른다. 스키장에서 골절상을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나는 예외일 것" 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사고가 나면 어쩔 수 없지" 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선택하지 않은 위험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혹시' '만의 하나라도' 고압선이 암을 유발한다거나 쇠고기가 인간 광우병을 일으킬 지 모른다는 가능성도 이에 포함되는 것이다.

위험심리학은 어쩔 수 없지만 국민들이 정부 발표를 신뢰하는 경향이 크다면 쇠고기 소비는 더 늘어날 것이다.

조현욱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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