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은 지금] 주말 새벽, 독서로 세상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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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6시 울산시 삼산동 공구상가 맞은편에 있는 원우아키텍 빌딩 3층의 한 사무실.

“고립무원 남극에서 537일간 버텨내고 28명 전원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조직원끼리의 흔들림 없는 신뢰가 돋보였다.”

“기록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점을 주목하자. 100년전 실패로 끝난 남극 탐험일뿐인데, 그들이 현장을 기록한 일기가 위대한 역사로 만들었다.”

울산지역 독서토론 동아리 ‘문사철 600’ 회원들이 20일 새벽 자신들의 아지트인 울산 공구상가 인근의 한 사무실 모여 토론을 끝낸 뒤 ‘책 읽는 도시 만들기’에 앞장서자며 파이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4각으로 배열된 책상 위에 책·노트·컴퓨터를 꺼내놓고 10여명의 직장인이 토론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앞쪽 화이트보드에는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라는 제목 아래 발언자의 이름과 발언 요지가 차례로 올라왔다. 토론은 책 곳곳에서 찾아낸 내용에 자신들의 경험 지혜, 다른 책을 읽으면서 쌓아온 배경 지식을 교환하며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지난해 6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6시 어김없이 열리는 독서토론 모임 ‘문사철 600’의 장면이다. 9개월 동안 추석·설 연휴가 낀 2주를 제외하고 한번도 건너 뛴 적이 없다고 한다. 참석자들의 직업은 의사·간호사·공무원·주부·교수·회사원 등 다양하다. 나이는 25세부터 49세까지. 한 번 모일 때마다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40명까지 모인다.

모임의 이름은 10년간 문학 300권, 역사 200권, 철학 100권 등 600권의 책을 읽자는 뜻을 갖고 있다. 손대호(42·중앙학문병원장)씨는 “지식인이라면 그 정도는 읽어야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서로 끌어주며 그걸 이뤄보자고 인터넷 친구끼리 의기투합했다”고 설명했다.

회원들은 그동안 『명상록(아우렐리우스)』 『파우스트(괴테)』 『대화(리영희)』 등 35권을 읽고 토론했다. 매일 50쪽 이상 읽어야 하는 만만찮은 분량이다. 정해길(41·보험설계사)씨는 “약속 장소에 좀 일찍 가서 읽고, 차 타고 가다 신호등에 걸렸을 때 1~2분씩 책을 펼치는 등 자투리 시간을 많이 활용한다”고 말했다. 주부 지승은(33)씨는 “좀 버거운 책도 있었지만 다독으로 배경지식이 쌓이면서 쉽게 넘어갔다”고 말했다.

회원들이 평일이 아닌 토요일 새벽에 만나는데는 이유가 있다. 김래형(49·등산용품점 대표)는 “가장 나태해지기 쉬운 시간이어서 그걸 이겨내고 의지력을 키우는데 안성맞춤이다. 생업에 매이지 않는 시간이고 주말 다른 스케줄도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문사철 600’을 시민운동으로 확산시키고싶어 했다. “요즈음 토론 방송을 들어보세요. 막무가내로 자기 주장만 하는 싸움판이잖아요. 독서와 토론을 통해 간접경험을 많이 쌓으면 적어도 상대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하기 쉬워질 거고, 그게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는 실마리 역할을 해줄 겁니다.”

글=울산=이기원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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