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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봤습니다] 해병대 캠프 닷새 만에 딴 사람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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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무주= 정현진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1 학생들이 IBS 육상훈련 중 단체기합을 받고 있다. 2 IBS 해상 실전 훈련 모습. 3 캠프 참가자가 11m헬기 레펠훈련을 받고 있다. [김경록 기자]

보트수상훈련, 공동체·희생 정신 길러

19일 오후 2시 남대천 강가. IBS(고무보트)훈련이 한창이다. 학생들의 얼굴엔 전날 제식훈련과 PT체조로 생긴 상처와 피로가 가득하다. “이 훈련은 팀워크가 생명이다. 내가 잘하면 모두 편하고 내가 게으르면 모두 힘들다. 알았나!” “앗” 이정훈 교관(30)이 훈련 내용을 설명할 때마다 교육생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해병대캠프에선 모든 질문과 대답이 ‘다·나·까’로 끝난다. 답변은 ‘앗’이라고 짧고 힘차게 외친다. 실전훈련과 똑같은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소대별로 고무보트가 지급됐다. 훈련은 보트 뒤에 정렬·배치 붙어·들기 준비·무릎 들어·어깨 매어·머리 이어 순의 6단계다. “‘보트 배치 붙어’라고 외치면 빠르게 양옆의 손잡이에 붙는다. 알았나?” “앗” “보트 배치 붙어” “하나·둘·셋, 앗.” 학생들은 서로 호흡을 맞추느라 각 동작을 10여 차례씩 반복한 끝에야 보트를 머리에 일 수 있었다. 얼굴은 일그러지고 땀방울이 솟는다. 고무보트는 훈련용이라도 무게가 85kg이나 돼 어른들도 들기 벅차다. “힘드나?” “아닙니다.” “힘드나?” “아닙니다.”… 교관과 학생들 사이에 문답이 반복될수록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때 ‘호랑이 교관’으로 악명 높은 정지웅(32) 교관이 들어섰다. 목소리가 시원찮았는지 단체기합이다. “전원 상의 탈의. 여학생은 면티만 입는다, 실시!” 강 바닥을 뒹군 지 30여 분, 온몸이 흙범벅이다. “얘들아 힘내자!” “할 수 있어, 좀만 힘내!” 학생들이 악물고 파이팅을 외친다. 그제야 정 교관의 표정이 풀린다. 사실 이날은 11m 헬기레펠(밧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훈련) 훈련이 예정됐다. 그러나 교육생들에게 공동체 정신을 길러줘야겠다는 판단에 훈련 내용을 바꿨다. 정 교관은 “IBS훈련은 10명이 한 몸이 돼 움직이는 것”이라며 “단결력과 희생정신을 키우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헬기레펠 훈련, 자신감·담력 무장

다음날 오전 10시. 11m 헬기레펠 훈련장. “복창한다. 나는 뛸 수 있다.” “나는 뛸 수 있다!” “ ‘부모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뛴다. 실시!” “엄마, 사랑해요!” 그러나 뛰어내리지 못해 실패. 겁에 질려 발 밑을 쳐다보던 박소연(오산 고현초 5)양에게 “힘내라!” “파이팅, 우린 할 수 있다!”고 동기들이 격려한다. 박양은 드디어 용기를 내 뛰어내렸다. 성공이다. 박양은 “위에 서니 눈앞이 캄캄했는데 동기들의 응원에 힘이 났다”며 뿌듯해 했다.

이날은 5m 높이에 설치된 30m 거리의 세줄 타기 훈련과 11m 높이의 레펠훈련이 실시됐다. 송민호(안양 민백초 6)군은 “평소 발표할 때 머뭇거렸는데 레펠 훈련을 하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며 “동료애를 통해 협동하는 법을 배운 게 가장 값진 성과”라고 말했다. 이날 훈련은 산 속 공동묘지를 찾아 담력을 키우는 야간 체험으로 이어졌다.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자원해

혹시 부모님 강요에 억지로 끌려온 건 아닐까? 자원자를 물었더니 절반 이상이나 손을 든다. 김호환(서울 봉천초 6)군은 친구 홍유빈군을 설득해 함께 참여했다. 김군과 홍군은 “해병대 캠프를 다녀온 친구들의 무용담을 듣고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교육생의 중대장을 맡은 유일한 대학생 김수영(20·여·중부대 2년)씨는 심신의 고통을 맛보러 왔단다. 김씨는 “해병대 캠프에 간다고 하니 친구들이 날 ‘정신 나간 애’ 취급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외교관이 꿈”이라며 “공부 의지를 일깨우고 나태해진 생활을 바꿔보려고 자원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인생의 변환점’으로 올 봄 국토대장정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김은재(일산 현산중 3)·홍유진(인천 대정초 6)·서유미(일산 한매초 5)양은 이번 훈련으로 의형제가 됐다. 여학생으로서 힘이 들지만 서로 도우며 모든 훈련을 소화해내 교관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배웠다”며 “용기를 키우는 좋은 기회였다”고 입을 모았다. 검도·유도로 다져진 이현복(순천 후평중 3)군은 훈련 내내 어린 동생들을 챙겨 주목을 받았다. 이군은 “평소엔 나만 알았는데 체력이 약한 동생과 친구들을 챙기면서 포용력과 배려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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