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외국인노동자들 가정집서 설 음식 즐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떡국과 닭고기 맛이 끝내줘요. " (슬라맛.33.인도네시아)

"김치는 먹어도 먹어도 정말 맛있어요. " (자누.34.파키스탄)

25일 오후 1시 부산 동래구 사직동 삼정그린코아아파트 105동 1004호. 까무잡잡한 피부의 외국인들이 모여 앉아 우리나라의 설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이날 점심은 1999년 4월 농협에서 명예퇴직한 이필대(李弼大.56)씨가 부산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초대한 자리였다.

인도네시아인 12명, 베트남인 6명, 파키스탄인 1명 등 17명이 초대됐다. 떡국과 밥.떡.나물.강정.잡채.식혜.과일 등 푸짐한 음식에다 맥주와 콜라도 곁들였다.

李씨가 이들을 초대한 것은 지난 99년 10월 한 시민단체의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에 참석했다가 한국의 명절 때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타국 생활의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말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

李씨는 "우리의 전통 음식과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며 "설 음식에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닭고기와 빵 등을 좀 더 마련했을 뿐" 이라고 말했다.

이슬람교를 믿는 인도네시아인 12명은 "돼지고기 빼고는 다 맛있다" 며 즐거워했다.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하는 누루와히(26)씨는 "정이 넘치는 가정 분위기가 아주 인상적" 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인도네시아인들은 지난 폭설 때 구경한 눈이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했다.

지난해 설 때도 외국인 노동자 15명을 초대했던 李씨는 이날 이들에게 양말세트를 하나씩 선물했다.

부산=정용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