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와이드] 백궁역엔 다람쥐가 살고있다

중앙일보

입력 2001.01.26 00:00

지면보기

종합 17면

수도권 지하철 분당선의 백궁역에는 문화가 배어 있다.

초기에는 여느 역과 다름 없었으나 역무원들의 노력으로 미술관.박물관.공원.동물원 등이 아기자기하게 갖춰진 문화의 공간으로 변신했다.

학생들과 유치원생들의 단골 견학 코스가 될 정도다.

왕병기(53)역장은 "도시 생활에 시달리는 승객들에게 시골의 고향역같은 푸근함을 안겨주고 싶었다" 고 말했다.

◇ 꽃이 있는 승강장〓역에 내리면 한겨울인데도 '푸른 느낌' 이 확 밀려온다.

군데군데 놓여 있는 10여개의 화분에 심어진 플라스틱 동백꽃이 회색 시멘트벽의 삭막함을 가려주고 있다.

이처럼 겨울에는 조화(造花)를 사용하지만 봄.여름.가을엔 진짜 꽃이 화분에서 자란다. 역사안 보온 창고에는 봄이 되면 밖으로 나올 생화 1백여그루가 겨울을 나고 있다.

◇ 꼬마 미술관〓승강장에서 위층 역사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벽에 붙어 있는 대형 그림 10여점이 눈에 들어온다.

'도시의 단편' 이란 제목 아래에는 '기증자 김지연' 이라고 씌어 있다.

한 역무원은 "분당에 사는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기증한 것" 이라며 "대학원생의 졸업 작품도 있고 초등학생의 미술대회 수상작도 걸려 있다" 고 설명했다.

그림을 감상하던 김세준(25.경원대3)씨는 "유명 화가의 작품이라기보다 이웃들의 그림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애정이 간다" 고 말했다.

이 곳에서는 주부교실 등 동호회가 마련한 서예전이나 미술 전시회가 열리기도 한다.

◇ 철도 박물관〓계단을 올라 2층에 다다르면 철도박물관이 승객을 맞이한다.

"삐~이~익" 하고 울리던 증기기관차 기적(汽笛) 모형과 석탄을 올려놓고 불을 때던 받침대가 이색적이다.

바퀴를 만들던 목재 주형틀에는 '그때 그 시절' 의 아련함이 묻어 있다.

왕역장은 "1998년 없어진 용산의 서울공작창 창고에서 겨우 찾아낸 것" 이라고 말했다. 옛날 전철표도 눈길을 끈다.

74년 발행한 '수도권 전철 개통기념표' 부터 과천선.일산선까지 표마다 지하철 개통 역사가 차근차근 정리돼 있다.

'금촌에서 서울까지 2백50원' 이라고 적혀 있는 성냥갑 크기의 비둘기호 열차표와 게이트 개표기가 없던 시절 사용한 재봉틀 모양의 전철 개표기도 정감이 간다.

이밖에 1백20년 전의 쌀 뒤주와 퇴직 직원이 기증한 암행어사 마패도 구경할 수 있다.

◇ 다람쥐 동물원〓길이 7m, 높이 3m의 다람쥐 집이 개표구 앞에 마련돼 있다.

추위 때문에 낙엽더미 속으로만 다니는 다람쥐는 모두 10마리. 화분과 박물관만으로는 생동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역무원들이 직접 청계천에서 사온 것이다.

역무원 김학만(51)씨는 "승차권을 빨리 달라며 보채고 허겁지겁 개표구로 달려가던 승객도 다람쥐를 보면 그 자리에 멈춰설 때가 많다" 고 다람쥐의 인기를 자랑했다.

승객이 직접 먹이를 줄 수도 있다. 땅콩과 옥수수 등을 섞어 만든 먹이를 한 봉지에 1백원씩 무인 판매한다. 이 돈으로 다시 먹이를 산다.

◇ '누구나' 도서관〓박물관이 있는 반대편 개표구 안에는 무인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다. 위인전부터 문학전집까지 1만여권의 책이 빼곡이 꽂혀 있다. 역무원들이 일일이 아파트단지를 돌며 기증받은 책이다.

책장에서 책을 빼들던 이재민(34.회사원.분당구 백현동)씨는 "출퇴근길에 종종 이곳을 이용해 유익하다" 며 "신간 서적을 좀 더 갖추었으면 좋겠다" 고 아쉬워했다.

◇ 승객은 왕〓승객이 표를 살 때 유리벽 너머로 고함을 치지 않아도 된다. 승무원용 뿐 아니라 승객용 마이크도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또 청소년들이 요청하면 대합실을 힙합 댄스장으로 빌려주며 누구나 무료 이용할 수 있는 탁구대도 있다.

나아가 백궁역 측은 오는 3월부터 저소득 가정을 위해 역사 1층 대합실을 결혼식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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