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자녀를 키워보니③ 유주현 <클라리넷 김한군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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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베이징국제음악콩쿠르 ‘최우수유망주상’ 수상, 독일에서 열린 제 25회 ‘오스트프리슬란트 음악 페스티벌’ 초청 연주, 각종 협연 및 초청 독주회 31회…. 클라리넷 연주자 김한(14)군의 지난 4년간의 이력이다. 관악기 부분이 취약한 한국에서 클라리넷 신동은 흔치 않다. 이런 김군의 뒤에는 어머니 유주현(42·서울 동부이촌동)씨가 있다.

할머니와 삼촌까지, 가족 모두가 지원군

유씨가 김군의 음악적 재능을 눈치챈 것은 초등 2학년 때였다. 학교 음악선생님으로부터 재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들으면서다. 처음 리코더를 부는 김군의 실력은 몇 년을 배운 상급생들 보다 뛰어났다. 그때만해도 ‘남들보다 조금 더 잘 하는 아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취미로 할 수 있도록 클라리넷 공부를 시켰다.

그런데 교내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유씨는 고민에 빠졌다. “교내대회지만 매번 우승하니 혹시 ‘이쪽으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됐죠.” 확인이 필요했다. 초등 4학년 때 팀프(TIMF통영국제음악제)앙상블의 클라리넷 연주자 이용근씨를 찾았다.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풍부한 감수성과 음악적 재능에 대한 평가였다. 이때부터 이씨의 지도 아래 전국 단위 콩쿠르에서 관악기부문 대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유씨는 ‘자녀가 음악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컸었다. 최고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사회 진출이 어렵다는 음악계의 냉혹한 현실 때문이다. 이런 유씨에게 김군의 삼촌 김승근(서울대 국악과 교수)씨와 할머니 박노경(소프라노서울대 음대 명예교수)씨가 힘을 실어줬다. 클라리넷 추천, 이씨와의 만남이 모두 이들의 조언으로 이뤄졌다. 가족 모두가 김군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기에 영재성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다양한 무대경험, 실전 속에서 실력 키워

김군은 실전 무대를 연습장으로 삼았다. 남들 앞에서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김군의 성격과 맞았고,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의 특성도 이유가 됐다. 피아노나 바이올린과 달리 호흡이 중심이어서 어른도 하루 연습량이 제한돼있기 때문이다. 구리시교향악단 주최의 ‘전국음악콩쿠르’에 첫 출전한 이후 연 10회 안팎의 콩쿠르협연독주회가 이어졌다. 중1 때는 무려 15회나 무대에 올랐다. 유씨는 “성장단계에선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이에겐 실전무대가 그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군에게도 연주가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베이징국제음악콩쿠르’ 출전을 위한 강행군이 부담이었다. 단 5개월 만에 10여 곡을 새로 익혀야 했다. 유씨는 “그때만큼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눴던 적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유씨는 대회가 촉박하다고 연습을 강요하지 않았다. “콩쿠르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것을 계기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죠.”

김군에게 ‘준비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려고 노력했다.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도록 설득했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과정이어야 해요. 즐거움보다 결과가 중요해지기 시작하면 고된 연습을 버틸 수가 없죠.” 이 대회에선 최우수유망주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김군을 위해 주최측이 특별히 신설한 상이었다.

싱가포르 유학, 새로운 도전기

김군은 예원학교에 입학했었다. 그러나 관악기 분야의 기반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유학을 생각했다. 유씨는 무조건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야 한다는 맹목적인 결정은 반대했다.

“미국유럽의 영재클래스에선 주말에만 음악교육을 받습니다. 평일엔 일반학교, 주말엔 음악학교를 다니는 식이죠. 그런 환경이 오히려 이중의 부담을 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명성에만 치우치지 않고 교육의 내용과 질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완벽한 영어학습이 가능한지도 따졌다. 향후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선 영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때 삼촌 김씨의 조언으로 ‘싱가포르 국립음악학교’를 알게 됐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음악을 중심에 놓고 과학·사회·영문학 등을 연계한 통합교육을 한다는 점이었죠. 마음껏 음악공부에 집중하면서 필요한 다른 공부까지 충분히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김군은 올해 1월 ‘싱가포르 국립음악학교’로 편입했다. 현재 본격적인 음악교육을 앞두고 영어공부 등 적응기간을 가지고 있다. 영국 헤미헬프(Hemihelp) 재단 초청 자선 공연 등 4건의 상반기 연주일정도 잡았다. 유씨는 “앞으로도 다양한 실전무대 경험을 쌓게 할 생각”이라며 “음악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으니 프로의식을 갖추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유씨는 “한이의 꿈은 세계적인 클라리넷티스트 마틴 프로스트(스웨덴)와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이라며 “어느 새가 나도 같은 꿈을 꾸게 됐다”며 웃었다.

<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 사진=최명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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