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총리 정무실장 인사 넉 달 걸린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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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 정무실장에 김유환(52·사진) 전 국가정보원 경기지부장이 21일 임명됐다. 행정고시(28회) 출신으로 국정원 정보판단실장 등 국내 파트 요직을 두루 거친 김 신임 실장 기용 과정은 여권 인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운찬 총리가 김 실장을 마음에 둔 지 4개월 만에 그를 데려다 쓸 수 있게 됐다. 1급인 총리실 정무실장 인사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여권 핵심인사들 사이에 힘겨루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수위 발탁 뒤 퇴진=부산 대동고·고려대를 나온 김 실장은 경기지부장(1급)으로 재직 중이던 2007년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에 전문위원으로 파견됐다. 인수위에 참여하면 향후 5년간 ‘순항’하는 공직사회 관례에 따라 김 실장은 국정원 내 요직 발탁이 점쳐졌다. 국정원 기조실장·2차장 후보로도 거론됐다. 하지만 김 실장은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6월 국정원에서 퇴직했다. 당시 이를 두고 “정권 내 파워게임의 결과”라는 얘기가 돌았다.

김 실장은 인수위에서 일하며 당시 역할이 컸던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 가까워졌다. 하지만 정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 이 의원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과 충돌하면서 힘이 빠지자 김 실장도 국정원에서 밀려났다는 게 정설이다. 국정원을 그만둔 김 실장은 그간 한화석유화학 고문으로 일했다.

◆정운찬의 강행=김 실장 이름이 다시 등장한 건 지난해 9월 정 총리가 취임하면서다. 학자 출신인 정 총리는 정두언·정태근·김성식 의원 등 친분이 있던 한나라당 소장파에게 정무실장 인사 등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김 실장을 쓰라”는 얘기를 들었다. 정태근 의원은 “인수위에서 일할 때 평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김 실장의 임명은 벽에 부닥쳤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 일부를 포함해 여러 곳에서 반대 기류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2007년 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나왔던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국정원 파일 유출설에 김 실장이 관련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정두언 의원과 사이가 나쁜 측에서도 거부 반응을 보였다. 정 총리는 고민하다 임명을 강행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정 총리가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게 ‘총리가 정무실장조차 맘대로 기용 못하는 건 곤란하다’는 얘기를 전달하고 오케이 사인을 받은 것으로 안다”며 “정 총리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불러 설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총리실이 정치 바람을 탈 가능성이 있고, 정두언 의원 그룹과 ‘왕차관’으로 불리는 박영준 국무차장 측 사이에 새로운 갈등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김 실장은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박 전 대표 파일과 무관하다는 건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나를 추천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정치권 내부의 얘기는 내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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