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오해 소지 큰 '강한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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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강한 정부' 란 표현은 쓰기 조심스럽다.

상반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오해의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보면, 국민이 원하는 바를 잘 반영하여 정치.경제.사회 측면의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정부를 강한 정부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경우 강한 정부는 민주주의와 양립이 가능하다.

*** 비판한다고 탓하면 안돼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의 목적을 독선적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양보 없이 반대 입장을 억누르는 정부가 강한 정부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 강한 정부는 민주주의의 반(反)명제일 뿐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강한 정부를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민주적' 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을 볼 때, 민주주의와 부합하는 의미에서의 강한 정부가 목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권위적 힘을 휘두르는 정부가 아니라, 정반대로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며 대화와 양보로 풀어 가는 정치가 강력한 정치다" 라는 발언에서도 대통령이 천명한 강한 정부의 민주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뜻한 바를 이처럼 선의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대다수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야당을 더욱 압박하며 국정 주도권을 보다 확실히 잡겠다는 의미가 '강한 정부' 란 표현에 내포됐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비단 야당의원들이나 야당에 정파적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만 그렇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일반 시민이나 중도적 지식인 중 상당수가 이번의 대통령 기자회견으로 인해 우려의 마음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부정론자들이 괜히 대통령의 진심을 곡해하여 시비를 건다고 그 편협함을 탓할 수만은 없다.

여러 상황을 볼 때 '강한 정부' 가 과연 민주적으로 국정 현안을 해결하는 정부를 뜻하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많을 만도 하다.

민주당 의원 몇명의 자민련 이적을 둘러싼 대립, 안기부 예산 유용 조사의 편파성 시비, 언론개혁의 석연치 않은 동기에 관한 논란 등이 불거지고 있는 파국적 상황이다.

이런 속에서 대통령이 '강한 정부' 를 천명하니, 입장과 의견의 차이를 무시하고 원하는 바를 기필코 성취해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의 발로(發露)가 아닌가 의심할 만하다.

오해라면 풀어야 한다. 오해가 있는 한, 진정으로 강한 정부를 구성하려는 노력에 힘이 실리기 어렵다. 부정론자의 오해를 풀기 위해 대통령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양한 의견 간에 대화와 양보가 이뤄져 산적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어나가는 민주적 의미의 강한 정부를 추구한다는 점을 야당과 국민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 설득은 믿어달라는 수사(修辭)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대통령 스스로가 상생(相生)의 정치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오해가 풀리고 설득이 될 수 있다. 상생, 즉 여야가 상호 양보해 국정을 원활히 수행함으로써 정치권 및 사회 전체가 사는 길이야말로 대통령이 강조한 '민주적인 강한 정부' 를 이루는 것임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 국회와의 조화 이뤄야

이를 위해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국정수행의 중심을 혼자서 독점한 것이 아니다. 국회가 또 다른 중심 축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이 대통령과 국회 간의 권력 견제 및 균형 원리에 입각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곧잘 망각된다.

대통령이 자신을 선출해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과 똑같은 비중으로, 대통령 선거와는 독립적인 별개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의원들도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헌법이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지 대통령중심제를 표방한 것은 아니다. 이런 헌법체제에서 대통령이 혼자 주도적으로 강한 정부를 만들 수는 없다. 국회와의 조화 속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대통령 소속당이 원내 제1당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더 그러하다.

물론 상생이 쉽진 않다. 대통령으로서는 야당의 발목잡기가 참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면 강압적으로 눌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상대방 의견이 발목잡기나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민주적인 강한 정부의 필수조건이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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