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시인 류시화 '또 손잡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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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출판가에 편안한 에세이물의 콤비로 활동해온 시인과 수도승이 다시 만났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시인 류시화씨가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쓴 산문을 엮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레.8천원)이란 제목으로 내놓았다.

류씨가 법정 스님의 법어집을 모아 『산에는 꽃이 피네』를 내놓은 지 2년여 만에 두번째 인연이다.

명상시인과 수도승간의 인연은 깊다. 이 시인은 젊은 시절 스님의 글을 읽고 법문을 들으러 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 고백한다.

산중의 미물들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삶을 듣고는 곧바로 스님의 가르침을 좇았다.

마침 시인의 작업실(서울 혜화동)이 스님이 주지로 있는 길상사(성북동) 인근이라 법회 때마다 찾아다니다 글 친구가 됐다.

시인은 스님의 고매한 법어를 책으로 엮은데 만족하지 못해 단아한 산문들을 모아 책으로 내기로 마음 먹었고, 내친 걸음에 스님이 산중에 묻어둔 편지글까지 끄집어냈다.

그래서 책은 다섯 장으로 이뤄졌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장은 각각의 계절에 대한 글이고, 마지막 장은 편지글 모음. 자연의 품속에 안긴 한 점 같은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의 삶이 계절별로 차곡차곡 쌓였고, 말미에는 스님이 내놓기 부끄러워하던 사사로운 인연들이 다소 거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스님은 "후박나무 아래는 수북이 잎이 흩어져 있네. 낙하의 질서를 지켜보면서, 사람도 저 후박잎처럼 자기 차례의 때가 되면 미련없이 질 수 있어야 할 것 같네…" 라고 썼다.

책을 내고 스님은 다시 산골로, 시인은 명상의 고향 인도로 떠났고, 글 친구의 우정만 세속에 남았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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