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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베스트셀러 오른 '성공한 권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지난 8일 오후 취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기자에게 편지 한 장이 전달됐다.

지난해 여름 펴낸 졸저 『성공한 권력』의 판매와 관련해 출판사 사회평론에서 보낸 인세 보고였다.

"제목 : 성공한 권력. 저자 : 전영기. 가격 : 9천5백원. 위 저작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인세보고 합니다.

정산기간 : 2000년 7월 1일~12월 31일까지.

제작판매 현황 : 출고〓2천25부, 재고〓5백95부.

인세현황 : 7백60원(정가의 8%)×2천25부(출고부수)〓1백53만9천원.

인세지급현황 : 1999년 8월 13일 계약금〓2백만원.

지급해야 할 인세 : (인세현황) - (인세지급 현황)〓 - 46만1천원. "

한참을 읽고 난 뒤 한마디로 '저자는 출판사측에 46만1천원을 토해내라' 는 뜻임을 알아차렸다.

출판사측은 99년 여름에 나와 출판계약을 하면서 현금 2백만원을 선인세로 지급했었다.

'실패한 책' 에 관한 이런 기록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시시콜콜하게 적은 것은 세계 10대 출판대국에 들어간다는 이 땅의 정신 노동시장의 현주소를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해서다.

『성공한 권력』은 지난해 8, 9월에 교보문고 정치.사회분야 베스트셀러 10위 리스트에 4주에 걸쳐 올랐다.

그 중엔 1위를 한 적도 한번 있었다. 상대적으로 판매량이 떨어지지 않았던 이 책의 판매량이 불과 2천여부에 불과하다는 것부터 충격이다.

사회평론사도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말라』등 베스트셀러로 매출액 기준으로 볼 때 지난해 '국내 10대 메이저' 에 속하는 탄탄한 출판사가 아닌가.

솔직히 밝히건대, 그 출판사의 윤철호 사장과 정종주 주간은 내 오랜 대학친구와 후배로 이 책에 특별히 쏟은 그들의 정성은 인정할 만했다.

아마추어 저술가로 처녀작을 낸 나로선, 이런 비교적 괜찮은 조건 속에 탄생해 최소한의 평판을 얻은 이 책의 반년치 수지타산이 마이너스 46만원으로 확인되자 적지 않은 절망감 내지 아픔에 휩싸였다.

내 개인적인 손익이 문제가 아니다. 절망감은 국내 독서시장의 빈곤함이 이 정도인가를 깨달은 충격 때문이고, 아픔은 이 땅의 출판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정신 노동자들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에서 나온 것이었다.

기획취재팀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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