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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의 시대는 끝, 전통으로 돌아가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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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호 05면

1985년 창단 이후 400여 회의 공연과 8장의 음반을 내놓은 국악그룹 슬기둥. 대표곡인 국악동요 ‘산도깨비’ ‘소금장수’는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슬기둥’의 1대 가수 강호중은 읊조리듯 노래했다.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신경림 시, 이준호 곡)가 청중을 숙연케 했다. 올해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30년을 맞는다. 세월은 많은 걸 변화케 했다. 시대가 변하듯, 음악도 변한다. 이 노래에서 우리는 아직도 가사의 절절함에 가슴 시리다. 하지만 저런 포크음악적 노래를 선호하는 청중이 과연 얼마나 될까?

국악계 ‘사건’ 슬기둥 창단 25주년 공연, 18~19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국악실내악단 ‘슬기둥’은 1985년 창단됐다. 슬기둥의 출현은 당시 국악계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국악의 대중화’란 슬로건은 이미 6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하나의 실천적 방향으로 구체적으로 제시한 건 슬기둥이 처음이었다. 창단 25주년을 맞는 슬기둥 콘서트(18~19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를 지켜보면서 두 가지 다른 생각이 교차했다. 하나는 이들에 대한 ‘시대적’ 이해고, 다른 하나는 ‘음악적’ 이해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대적으로는 아직도 느낌표(!), 음악적으론 이제는 물음표(?)다.

초창기 슬기둥 멤버는 시대적인 소명을 깨닫고 실천했다. 당시 그들이 지향했던 방식은 지금도 감탄할 만하다. 독주곡과 관현악이 많이 연주되던 시절에 ‘국악실내악단’을 표방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국악관현악이 인원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시대적인 미감과 동떨어져 갈 때, 실내악단의 ‘소수 정예’를 중심으로 한 ‘편안한’ 음악이 당시 꽤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실제 음악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아쉬운 점도 많다. 우선 악기의 역할 분담이 도식적이다. 국악기는 선율악기요, 서양악기는 화성악기라는 이분법이 철칙처럼 지켜진다. 신시사이저와 기타가 화음을 받쳐주는 공식이 일률적이다. 국악기 사이에 상대적인 어울림도 약하다. 국악기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나 특정 한 악기의 음색이나 특징을 알리는 데 효과적인 편곡 방식이다.

‘국악기+포크음악=슬기둥’. 초창기의 슬기둥 음악의 도식이다. 국악의 전통적인 감수성과 70년대 대중음악의 포크적 감수성이 접점을 이룬 수준이다. 슬기둥은 분명 국악계의 내부적인 입장에서 보면 ‘혁신’이었지만 음악의 전반적인 입장에서 보면 ‘타협’이다.

90년대 들어서 슬기둥은 조금씩 변화했다. 마치 사회 전반적으로 이념이 퇴조하는 자리에 욕망이 그 간극을 메우듯이 그들의 음악에서 시대적인 애상성은 줄어들고, 오히려 역동적인 장단을 중심으로 한 역동성이 늘어났다. 사반세기 동안 슬기둥과 함께 한 이준호의 곡에는 ‘동살풀이’ 장단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그의 작품이 좋은 가교가 되었을까? 지금은 오히려 전통 리듬을 더 다양하게 구사하는 젊은 그룹이 훨씬 많아졌다.

그렇다면 이런 한계가 있음에도 슬기둥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얼까? 개인기다. 그간 슬기둥의 멤버가 악기별로 대략 서너 차례 바뀌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모두 탁월한 기량의 소유자였다. 예나 이제나 슬기둥은 ‘작품’으로 말하지 않는다, ‘연주’로 말한다.

돌이켜보면, 슬기둥은 분명 한 시대의 트렌드를 만들어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것은 80년대와 90년대와 소통할 수 있는 트렌드였다. 트렌드는 속성상 한계가 있다. 슬기둥적인 음악이 트렌드를 넘어서 하나의 ‘트래디션(전통)’이 되고자 한다면, 이제 오히려 ‘전통성’을 보강해야 한다. 이제 청중은 더 이상 신시사이저나 기타를 배경으로 해서 국악기가 선율을 연주하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국악 분야의 작곡과 편곡 방식도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슬기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도 슬기둥의 강점은 역시 노래다. ‘산도깨비’와 ‘소금장수’의 대를 이을 국악동요, ‘쑥대머리’, ‘흥타령’의 뒤를 이을 국악가요를 찾아내는 일이다. 강호중과 김용우의 대를 이은 슬기둥의 3대 가수 오혜연은 오히려 더 전통적인 소리꾼이기에 더 기대가 된다.

슬기둥이 사반세기 후에도 계속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이번 공연의 부제처럼 ‘비상(飛上)’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전통에서 더 많은 소재를 찾아내야 할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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