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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탈탈 털어 모은 '보물'...혼자 보는 건 의미 없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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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호 08면

1 마이센 장식 인형 ‘사랑 이야기’. 독일, 18세기 말, 높이 42㎝.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지만 이 장식 인형 부부는 그렇지 않다. 세 명의 남편이 각자 아내에게 선물을 건넨다. 사랑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2 로열 우스터 ‘과일 그림 금 커피 세트’. 영국, 19세기. 영국 왕실에서 사용되었던 작품. 사실적인 과일 그림은 로열 우스터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3 세브르 ‘평화의 화병’. 프랑스, 19세기, 높이 82.5㎝, 밑지름 24㎝. 프랑스 세브르 자기 특유의 청금색 바탕에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꽃을 조화롭게 그려 넣은 대형 화병. 세브르 자기는 화려한 색감과 금채가 특징이다. 고종 황제의 유물 중에도 세브르 제품이 많다.

살림하는 여자치고 그릇 욕심 한번 안 내본 이는 드물 게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도 식기에 먼저 마음이 꽂혀야 음식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지는 법이다. 부천유럽자기박물관엔 유럽 상류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국적인 자기들이 있다. 여느 박물관처럼 유리장 안에 일괄적으로 유물을 넣어두지 않았다. ‘기가 막히군’이란 생각이 절로 드는 고급스런 앤티크 장에 놓였거나, 테이블 위에 세팅돼 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듯한 자연스러운 느낌. 그릇부터 장까지, 모두 복전영자(65) 관장이 수집해 경기도 부천에 기증한 것들이다.

이경희 기자의 수집가 이야기 - 부천유럽자기박물관 복전영자 관장

“어릴 땐 절대 자기를 안 만지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스무 살이 되니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가더군요. 그냥 예뻐서 모았어요. 다른 감정도 없었죠.”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릇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사탕 사 먹을 돈은 안 주는 엄마가 비싼 그릇을 사들이는 게 어린 마음에 불만스러웠다. 그러나 막상 그가 자기에 꽂히고 나선 소품 위주로 모으던 어머니보다 더 통 크게 질러댔다.

주요 수집품은 18~19세기 유럽 자기류다. 우리나라는 자기의 역사가 길지만 유럽은 그렇지 못하다. 독일 마이센에서 18세기 초 연금술사 J.F. 뵈트거가 백자를 굽는 데 성공하면서 유럽에서 최초로 경질자기가 생산됐다. 초반에는 중국 자기를 흉내 내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마이센만의 개성을 찾으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기로 등극한다. 프랑스 세브르 자기, 영국의 로열 우스터와 로열 덜튼,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 등이 마이센에 이어 18세기에 출발한 유럽의 명품들이다.

조그마한 박물관이지만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이 아꼈던 ‘달과 게르하르트 디너 서비스’, 마이센에서 19세기에 단 세 쌍만 만들었다는 ‘나무 위의 새’ 중 한 쌍 등 귀한 몸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처음엔 잘 모르고 가짜를 많이 샀어요. 나중에 다 깨버렸죠. 그 뒤론 품질을 보증해주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주로 구입했어요.”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탈탈 털어 수집에 열을 올렸다. 자신이 어린 시절 엄마한테 불만을 품었던 것처럼 자식들도 탐탁치 않아 했다. 비싼 그릇에 오므라이스를 담아 내놓으며 “(접시에 자국 나지 않게) 소리 내지 말고 먹으라”고 다그치니 밥맛을 제대로 느꼈겠나.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장을 하나 낙찰 받아 딸에게 선물로 줬더니 “나한테 그런 거 주지 마. 닦아야 되고 귀찮아서 싫어”라며 손사래를 쳤단다.
“애들은 던져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컵을 좋아해요. 이런 취미도 내 세대에서 끝나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공장에서 찍어내는 중국 자기에 밀려 옛 도자기 공방들이 수없이 문을 닫고 있다. 그가 수집한 것들 중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브랜드도 수두룩하다. 그 희소성 때문에 옛 자기의 가치는 되려 높아지고 있다. 요즘은 손바닥 만한 마이센 자기 하나도 1000만원을 호가한다. 박물관 전시품 중 프랑스 세브르 ‘평화의 화병’은 30년 전 구입 당시 운송비만 1700만원이 들었단다. 자기 하나에 아파트 한 채 값이 오간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돈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보물이 됐다.

“고려청자나 백자는 너무 비싸서 사 모을 엄두를 못 냈어요. 비교적 만만했던 유럽 자기들도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비싸요. 나이도 들고 돈도 없어서 더 이상 수집은 못하죠.”

그는 평생 모은 것을 부천유럽자기박물관을 비롯해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 상명대 박물관에 800~1000점씩 나누어 차례로 기증했다. 남편(정홍택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이사장)과 인연이 있는 곳, 유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인 곳들이다.
“저도 모으면 다 제 것이 될 줄 알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한두 점 있을 때라면 몰라도 수량이 많아지면 기증하는 게 좋아요. 혼자 본다는 게 어느 순간 의미가 없어지거든요.”

수집하고 기증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예상 외의 답이 돌아왔다.
“어렵다기보다는…. 오래 보다가 기증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여긴 별로 기증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한국의 기증 문화가 좀 짜달까….”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면 블로그 ‘돌쇠공주 문화 다이어리(blog.joins.com/zang2ya)’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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