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산당 창당'도 무방하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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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열린우리당이 예상했던 대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형법을 보완키로 했다. 안보문제를 책임진 여당이 안보가 불안해진다고 우려하는 여론을 무시하고 왜 폐지 쪽으로 가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여야의 대결은 불가피해졌고 찬반 세력 간의 갈등도 증폭될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는 이미 밝혔듯이 인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은 빼고 국민 다수의 견해처럼 법의 명칭이야 어떻게 되든 보안법과 같은 형태를 유지하자고 제안했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으로 볼 때 형법 조항 한 두 군데 추가하는 식으로는 우리 안보를 지켜내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안대로 보안법이 폐지되면 서울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흔들어도, 김정일 찬양 인터넷 사이트를 설치.유포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더욱 큰 문제는 간첩 등 우리 안보에 중차대한 사안에 대한 법적 대응이 무방비상태가 됐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인식부터 문제다. 여당은 북한을 '내란목적 단체'로 보면서도 이번에 '폭동을 목적으로 한다'는 전제를 추가했다. 특히 폭동목적이 아니라면 설사 국내의 '국헌문란 내란단체'라도 그들의 행동을 처벌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계급독재를 추구하는 공산당을 국내에서 창당해도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게 됐다. 남북이 대치해 총을 겨누는 상황은 안중에 없고 마치 평화로운 이상사회에 사는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조항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법적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여당은 이번에 신설한 '내란 목적 단체 조직'조항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단견이다. 간첩죄가 단적인 예다. 과거엔 보안법에 간첩죄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란죄와의 연관성이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내란 여부를 사전에 탐지할 수 있는 찬양고무나 잠입탈출 조항이 사라졌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내란음모나 그런 예비음모가 있었는지를 사전에 파악하고 정확하게 판단하기 매우 어렵게 된 것이다. 이제 북한 공작원이 국내에 침투해 지령을 전파할 경우에도 처벌을 둘러싼 법적 논란이 예상되는 등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간첩죄'의 처벌 여부를 놓고 공안당국이 고민해야 하는 국가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집권세력은 사상의 자유를 내세우는 모양인데 자유를 허무는 사상까지 용납할 수는 없는 것이다. 통일 후나, 북한이 변화된 뒤에나 가능한 얘기다. 안보가 잘못되면 모든 것이 허사다. 보안법 폐지를 보완하는 방안은 다양하다. 여당 스스로도 대체입법을 하나의 안으로 제시하지 않았는가. 고집부리지 말고 야당과 대화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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