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띄운다] 아침 바다 갑판위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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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망망한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해는 황금빛 빛살을 사방으로 내쏘며 아침 하늘을 현란하게 물들이며 펄펄 살아 넘치는 기운으로 일렁이게 한다.

아침의 싱그러운 기운이 넓디넓은 바다로 퍼지면 금빛으로 자잘하게 퍼덕거리는 아침 바다.

파도와 파도 사이의 이랑은 붉은 색조로 넘실거리고 간간이 해풍에 날리는 물보라도 아침 빛살을 되쏘며 깨어진다.

아침 바다를 가르는 뱃전의 어지러운 소용돌이는 풋풋한 활력으로 살아 튄다. 갑판 선원들의 파도의 반사파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은 아침의 빛살을 기운찬 활기로 되쏜다.

배의 둔중한 엔진 소리가 아침 하늘로 울려퍼지며 그물이 서서히 갑판으로 올라온다. 순간 햇살에 부서지는 물고기 비늘, 비늘들의 황금 알갱이. 선원들의 생기 넘치는 고함 소리가 들리고 그물 속에서 퍼덕퍼덕 싱싱하게 날뛰는 물고기들이 갑판으로 쏟아진다. 갑판이 비좁다는듯 물고기들은 펄떡이며 다시 아침 햇살 한짐을 갑판에 부려놓는다.

물고기를 찾아다니며, 헛그물질 하며 며칠 동안 짙은 우울과 피로에 젖어 흐느적거리던 선원들이 일시에 활기를 되찾는다. 선원들은 떠들썩한 신명으로 물고기들을 신속하게 처리하며 며칠만의 풍요의 바다를 만끽한다.

실로 며칠만의 풍어였다. 바다를 끊임없이 헤매며 그물을 던졌지만 어획은 극도로 부진했다. 폭풍우도 몇 차례 바다를 무섭게 갈아엎었고 선원들은 낮과 밤도 없이 캔동?치받히며 쉬임없이 그물에 매달렸다.

배가 출항한 이상 그저 하릴없이 배를 띄워 놓을 수 없는 바다의 어로작업. 배는 산더미 만한 파도를 위태롭게 타넘으며 그물을 바닷속으로 던졌고 선원들은 기진맥진하여 허우적거렸다.

오로지 바닷속 물고기 떼의 기묘한 이동경로에 달려 있는 선원들의 바다의 삶,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해도 쉴새없이 그물을 던져 어군들을 끌어올려야만 하는 어로작업. 지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선원들 사이에 자연스레 위험한 싸움도 일어나고 실제로 머리에 피를 흘리는 선원도 있다.

하지만 단 한번의 풍어에 선원들의 피로와 고통은 단숨에 사라진다. 선원들의 피와 땀도 갑판에서 퍼덕거리며 용솟음치는 물고기들의 탄력적인 몸부림 속으로 잠겨든다. 몇 달이고 바다에 떠서 어로작업을 해야 하는 선원들의 바다의 삶의 눈물도 갑판 위 물고기들의 윤기 반짝이는 비늘 속으로 사라진다.

망한 바다는 쉽게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지 않는다. 바닷속 어군들의 이동경로도 기이하고 신비롭다. 바다는 폭풍으로, 때로는 태풍으로 선원들의 목숨마저 간혹 빼앗아 버린다.

하지만 선원들은 목숨을 뱃전에 매달고, 공동묘지를 선미에 이끌고 무조건 뛰어들어야 하는 숙명의 바다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 바다도 가끔은 엄청난 양의 어군들을 잉태하여 선원들의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바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그것이 분명한 선원들의 삶의 바다고 살아 숨쉬는 바다의 생명력이다.

땀과 고통, 피와 눈물의 어로작업, 그 바다의 현장을 전혀 모르는 땅의 사람들의 일상의 바다도 이런 것일 지 모른다.

기나긴 고통과, 태풍과 폭풍의 바다를 감내하며 끊임없이 그물을 던지며 언젠가는 풍요의 어군들을 선사하는 바다가 땅의 일상의 바다에도 출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바다는 선원들의 꿈과 절망, 고기 떼들을 감추고 영원으로 넘실거린다. 갑판의 선원들은 바다가 풍성하게 잉태한 어군들을 신명나게 처리하고 바다의 생명력과 풍요의 기운을 한껏 내쏘는 물고기들은 싱싱하게 용트림친다. 갑판은 선원들의 삶의 바다요, 물고기들이 건강하게 튀어오르는 또다른 풍요의 바다다.

동녘 하늘에 환하게 떠오르는 해는 아침바다를 다양한 빛깔로 물들이고 나는 다시 엔진을 걸어 파도를 헤치며 삶의 바다, 절망과 풍요가 명멸하는 어로작업의 바다로 배를 몬다.

고통의 바다를 넘어서서 바다의 풍요를 만끽하는 선원들의 신명에 겨운 떠들썩한 고함소리도 끝없이 들린다.

장세진 <소설가>

<약력>

▶원양어선과 국내어선 10년 승선

▶해양 단편소설 '샤치떼들' 로 한국소설 제1회 신인상 수상

▶해양 장편소설 '바다, 그리고 바다 '로 제2회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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