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예산의 투명성이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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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내년도 예산안이 여야간에 합의되면서 오늘쯤 국회를 통과해 확정될 전망이다. 당초 1백1조여원에서 8천억원이 줄어든 1백조2천여억원으로 결정됐다.

새해 예산이 올해를 넘기기 전에 마무리돼 그나마 다행이지만, 총예산의 1%도 안되는 8천억원을 삭감하기 위해 법정기한을 20여일이나 초과하면서 야단법석을 떤 것에 씁쓸한 감이 없지 않다.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 심의에서 진통을 겪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내년의 경기전망과 관련된 거시재정운영기조에 이견이 있었고 또 일부 개별 예산항목의 목적과 성격에 여야간 시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예산안을 긴축적으로 편성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올 당초예산과 비교할 때 9% 이상 증가한 셈이었다.

물론 내년에 경기가 하강할 것에 대비해 이 정도의 증액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건전재정으로의 복귀를 위해선 재정규모 증가를 가능한 한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정부는 정보화.교육.국방 등에는 예산을 증액시켰으나 경기부양과 직결되는 사회간접자본(SOC)사업에 대해서는 예산을 동결시켰다.

이런 이유로 이번 국회 심의에서 총예산 규모를 8천억원 삭감하면서 SOC사업 등에 예산을 증액시킴으로써 총 예산조정액이 2조원 이상 되도록 할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이번에 야당이 제기한 주장들에 일단 설득력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의 아쉬움이 남는다.

첫째, 예산의 총액규모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한 나라의 일년 살림살이 규모가 여권과 야당간의 물밑접촉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인가? 국가예산이라는 것이 어차피 정치적 협상과 전혀 무관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경제논리에 앞선 정치논리가 우선할 때 나라경제의 효율성은 무너지고 만다.

이런 이유로 국가예산을 중장기적 계획아래 운영할 것을 그동안 각계에서 권유해 왔고 정부도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해 왔으나 실제론 아직까지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둘째, 내년도 예산은 편성 당시 내년의 세수전망을 상당히 낙관시하는 가운데서 편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세입감소를 예상한 확실한 세출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하며 그러면서도 내년의 경기진작에 도움이 되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펼쳐나가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것과 같은 국면인데 이번 국회 심의에서 이런 점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표출되지 못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SOC투자에 5천억원 가량의 예산증액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어디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되느냐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역개발투자가 특정지역에 집중되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음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또한 농어가 부채탕감을 위해 6천여억원을 증액하고자 한다는데 이것이 혹시 선심성예산의 일종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요약컨대 말로는 불요불급한 예산은 가급적 줄이고 대신 경기부양을 위한 지원을 늘리겠다고 하나 실제론 세출내역 구석구석에 낭비성.선심성 예산이 내재돼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국회 심의에서 이를 따지지 못하고 도리어 당파적.지역이기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른다면 진정한 예산개혁은 요원한 것이다.

셋째, 아직도 예산의 편성과 심의, 그리고 운영하는데에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예로 바로 새해예산이 오늘 국회를 통과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그 구체적인 조정내역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예결위 산하 소위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공개하도록 해놓고 이를 제대로 시도해 보지도 않고 취소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예산의 투명성은 예산개혁의 종착점이면서도 개혁의 전제이기도 하므로 이의 실현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동건 <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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