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내신이 모두 1등인데 누구를 뽑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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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연세대가 공개한 올해 수시 1학기 지원자의 내신 실태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지원자의 15%가 고교 전 과목에서 '수'를 받았고, 합격자보다 더 많은 학생이 '수'였다고 한다. 모두가 '수'인 데 대학이 이를 구별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일부 대학이 실시한 고교등급제는 대학으로서 적합한 학생을 뽑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고만고만한 자료를 바탕으로 각 수험생의 학력을 비롯해 적성을 나름대로 평가하려고 애쓴 것이다. 역설적으로 등급제를 않고 전형을 한 대학들의 재주는 정말로 놀랍다.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거듭 강조한 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의 금지는 입시에 관한 한 대학의 손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부풀린 엉터리 학생부 성적으로 대학들이 우수한 학생을 고를 수는 없다. 도토리 키재기도 아니고 1등도 '수'이고 꼴찌도 '수'인 내신을 제아무리 갖은 방법으로 활용해도 우열을 매기기는 힘들다. 대학에 숨통과 여지를 주지 않는 막무가내식 금지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정책이다. 교육부는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어떻게 학생을 선발할 것인지 지침을 만들어 내려보내라.

고교 성적은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로 이뤄져야 하고, 고교 사이에서도 학교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학급 안에서 학생 간에 공부 경쟁이 일어나고, 또 고교 간에 실력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느 학교가 잘 가르치고 어디 학교가 못 가르치는 것이 드러나고 그 평가에 의해 선생님들의 봉급도 달라져야 한다. 어떻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와 판판이 놀고 먹는 교사가 같아야 하는가. 이렇게 되면 대학도 고민을 안 해도 된다. 지금 같이 모두 1등인 성적표를 놓고 대학이 어쩌란 말이냐.

여러 번 촉구했던 것처럼 정부는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일임해야 한다. 전형자료의 반영비율을 결정하고 해석해 점수화하는 작업은 대학의 몫이다. 각 대학은 제출된 자료를 자기 실정에 맞게 객관화.공정화해 신입생을 뽑으면 된다. 대학에 대한 입시 자율성의 인정이야말로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일이다. 지금 교육부는 대학을 감사할 것이 아니라 성적을 뻥튀기기한 고교들을 감사해야 한다. 고교가 성적을 올바르게 평가하도록 관리와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고교등급제 등 입시 3불(不) 정책을 두고 나라 전체가 찬성과 반대, 특목고와 일반고, 강남과 비강남, 빈부로 나뉘어 극한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육 문제는 이념대결과 세 대결로 해결되지 않는다. 입학제도 문제를 법으로 묶겠다는 열린우리당의 발상도 문제다. 오히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측면에서 본고사나 기여입학제 실시 여부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과외 열기를 부채질하지 않는 변형된 본고사, 공정성을 흩트리지 않는 범위의 기여입학 등은 나쁠 것이 없다. 대입제도를 놓고 패싸움은 그만두고 해법 찾기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