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현대는 정보 넘치는‘지성의 중세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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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집중력의 탄생
매기 잭슨 지음
왕수민 옮김
다산초당, 500쪽, 2만5000원

우리말 제목과 원서 제목이 정반대라서 좀 당혹스럽다. ‘집중력의 탄생’이란 큰 제목 아래 ‘Distracted’ 즉 ‘집중력 분산’이라고 버젓이 쓰여 있다. 확인해보니 원서 제목은 ‘Distracted : The Erosion of Attention and the Coming Dark Age’(집중력 소멸과 암흑시대의 대두)이다.

왜 이런 엉뚱한 결과가 빚어졌을까? 판매에 유리한 실용서로 포장하려다가 오버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부제까지 ‘현대인의 지성을 회복하기 위한 강력한 로드맵’이라고 달았지만, 내용과 따로 노는 문패인 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책은 매력적이다. 멀티태스킹, 빠른 의사결정, 효과적인 정보 서핑 등으로 요란한 세상,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비판과 포괄적인 진단 때문이다. 심도 있는 사고나 대화, 여기에서 오는 몰입의 즐거움과 담쌓고 사는 현대문명은 “암흑기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는” 신(新)중세시대라는 게 저자의 단호한 입장이다.

최근 미국 뉴저지공대 고학년을 대상으로 포트폴리오 작성 능력을 따져봤다. 12점 만점에 낙제점인 6.14점이다. “학생들은 자료를 찾아 인용할 줄만 알았지 자료의 중요성과 타당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졌다.”(257쪽) 도서관을 찾지 않는 학생도 부지기수이다. 놀랍게도 미국 최상위권 대학생 거의 전체가 그렇다.

“결국에는 (요즘 대학생들에게) 사고 과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한 절망적인 진단도 소개된다.

지성의 몰락, 책의 죽음, 사고의 실종이란 집중력 저하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대안으로 제시돼온 정보 해독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인터넷에서 양질의 정보를 끄집어내는 기술을 가르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집중력 부족 문제는 문명의 존폐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저자는 미 콜로라도 산 속의 명상센터를 겸한 미국 사찰에서 신경과학자와 불교학자들이 진행하는 명상·집중력 사이의 상관관계 연구도 소개한다.

“고도의 명상은 자신과 세상을 더 좋게 바꿀 수 있는 길이다. 명상은 단순히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마음의 작동과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2500년 동안 이어져온 정신의 체조이다.”(400쪽)

틱낫한 스님을 통해 알려진 mindful­ness(마음다함)야말로 불교의 핵심 교의이자, 훌륭한 집중력 강화법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한 번 묻자. 왜 그렇게 집중력이 중요할까? 그건 통념처럼 효율성 제고의 차원이 아니다. 집중력이란 “고차원의 사고 뿐 아니라 우리의 윤리의식, 심지어는 행복을 이끄는 핵심적인 열쇠”(13쪽)이다.

저자 매기 잭슨은 저널리스트. 많은 정보를 요령 있게 다루고 있고, 그래서 문제의식과 설득력 또한 높은 편이지만, 특급저술로 분류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지적 높이와 내공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열정은 인정할 만하고, 무엇보다 문화의 축적을 도외시한 채 미국 못지않게 폭주하고 있는 IT 천국(집중력 분산의 천국) 한국 땅에서 환영 받아야할 책인 것은 분명하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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