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사실상 정계은퇴] 여 세력재편 급류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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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이 17일 '퇴진' 을 전격 선언했다. 지난 2일 청와대 만찬에서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이 '권노갑 2선 후퇴론' 을 제기한 지 보름 만이다.

權위원은 '1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 나와 이같은 결심을 밝힐 예정이다. 이에 앞서 그는 '당 내외로부터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받아왔다.

특히 당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양갑(兩甲, 권.한화갑 최고위원)갈등의 '교통정리' 에 나서면서 2선 후퇴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거취 문제와 관련한 그의 결심은 올들어 4.13 총선 불출마, 8월 최고위원 경선 불출마 선언(權위원은 지명직 최고위원이다)에 이어 세번째다.

그렇지만 이번 2선 후퇴 선언은 "사실상 정계 은퇴" 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치일정상 정계 복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교동계의 변화를 비롯해 여권 내의 급속한 세력 재편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결심 과정〓그동안 權위원 측근들은 최고위원 사퇴 대신 최고위원 자리를 유지하면서 당무와 거리를 두는 '역할 축소론' 으로 상황을 돌파하려 했다.

그러나 "당정쇄신의 핵심을 權위원 퇴진 쪽에 맞추는 여론 분위기" 가 끝내 부담이었다고 한다.

그의 핵심 측근은 "權위원 퇴진을 뺀 어떤 카드도 국정쇄신의 강렬한 이미지를 얻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용퇴를 결심한 것으로 안다" 고 전했다.

그런 결심 과정까지 權위원은 金대통령의 의중을 청와대 한광옥(韓光玉)비서실장.박지원(朴智元)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통해 파악해왔다.

지난 15일 한화갑 최고위원이 청와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權위원의 결심을 굳히게 한 계기였다.

이 측근은 "權위원은 金대통령을 위해 2선이 아니라 4, 5선 후퇴도 할 수 있고, 백의종군(白衣從軍)을 할 수 있다는 생각" "40년간 金대통령을 버팀목처럼 보좌해왔는데 자신의 문제가 국정운영의 걸림돌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고 전했다.

그렇지만 權위원 진영에선 서운함과 답답함도 묻어난다. 정동영 위원으로부터 '제2의 김현철' 에 비유됐던 權위원이다.

때문에 "(權위원이)전면에서 물러나면 어떻게 명예회복을 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여전히 고민 중" 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權위원은 지난 15일 민국당 김윤환(金潤煥).신상우(辛相佑)의원과 골프를 같이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내가 언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살았느냐. 맘을 비웠다" 면서도 명예회복 부분에 답답해했다고 한다.

일부 측근들 사이에서 "2선 후퇴하면 鄭위원이 제기한 문제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며 鄭의원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權위원은 "이 문제로 더 이상 당이 시끄러워져선 안된다" 고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 파장〓權위원의 퇴진은 여권 내 세력 판도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 우선 그가 좌장으로 있는 동교동계의 간판이 바뀐다. 그 자리는 韓위원이 맡을 것으로 보이나 동교동계의 당무 영향력은 줄어든다.

金대통령은 당 지도부의 역할과 권한을 분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權위원이 관장해온 여권의 비공식 의사 결정라인을 거둬들일 것이 확실하다.

여권 관계자는 "누가 새로 당 대표가 되든 權위원 등 동교동계가 가진 당 장악력을 갖기 힘들 것" 이라면서 "金대통령은 최고위원회를 강화해 최고위원간 경쟁체제로 당을 운영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金대통령이 요즘 "최고위원들이 중심에 서서 당을 이끌어달라" 며 '최고위원 중심' 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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