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회수로 동포기업 줄도산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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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재일동포 신용조합 가운데 랭킹 1, 2위인 두 조합이 도산 위기에 몰렸다.

16일 일본 금융재생위원회에서 부실 판정이 내려져 본격적인 정리 작업이 진행되면 동포 사회의 경제기반에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된다.

◇ 부실화〓기본적으로 일본의 경제상황과 맞물려 있다.

버블 경기 때 대출을 많이 해주면서 담보로 잡은 부동산의 값이 폭락해 부실화한 것이다.

장기 불황으로 주요 대출 고객인 동포 기업들이 어려워진 것도 큰 원인이 됐다.

간사이(關西)흥은(興銀)은 지난 3월 말 결산 때 이미 자기자본 비율이 부실 기관 지정 기준인 4%보다 높은 4.64%였으며 이후 증자를 통해 5.09%로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금융청은 채무 초과 상태라고 판단, 금융 불안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부실 기관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간사이흥은은 "부실화가 우려되는 대출 기업의 6개월 이상 연체 대출액이 3백40억엔인데도 금융청은 대손충당금으로 9백60억엔이 필요하다고 하는 등 자의적인 행정조치를 취했다" 고 주장했다.

◇ 자구 노력〓그동안 동포 신용조합들의 자체적인 정리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용조합을 하나로 통합하고 양국 정부의 지원을 얻어 '클린뱅크' 로 재편하자는 기본적인 틀에는 공감했지만 주요 조합간 해묵은 감정 대립 등으로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최근 간사이흥은의 이희건(李熙健)회장과 도쿄(東京)상은의 김성중(金聖中)이사장이 별도로 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나선 것도 일본 당국에는 분열로 비춰졌다.

신용조합들은 동포 금융기관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획일적 정리보다 기존의 틀을 가급적 유지하면서 재편을 추진하자고 양국 정부에 요청해 왔다.

그러나 일본 당국은 시간을 끌면 공적자금이 더 들어간다고 본 데다 한국 정부도 중립을 지킨다며 동포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 동포 사회에 미칠 영향〓정리작업이 시작되면 이들과 거래해온 동포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간사이흥은 한 곳의 여.수신 규모가 신용조합 전체의 50%가 넘어 동포 사회 전체로 충격이 확산할 수 있다.

금융청은 예금자를 최대한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최우선적 고려 사항은 역시 일본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의 투입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금융청은 1998년 조총련계 신용조합이 도산했을 때 3천억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여론의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이를 의식해 금융청은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는 대출은 모두 조기 회수할 것이 분명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동포 기업.자영업자들로서는 큰 일이다.

자칫 한.일관계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 향후 전망〓정리작업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1년 이내에 제3자 인수 또는 청산으로 정리가 된다.

그동안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따진다는 명목으로 일본 당국은 동포 사회의 인적 네트워크를 낱낱이 들출 것이다.

동포들이 자발적으로 추진해 온 은행 설립 작업도 무산될 전망이다.

금융청은 한국인 신용조합을 모두 정리해 하나의 전국적인 금융기관으로 재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신한은행과의 관계〓李회장은 한국 신한은행의 회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李회장의 개인 지분은 0.13%에 불과하다.

그외에 재일동포 1천1백명이 개인 자격으로 지분 27%를 보유 중이다.

간사이흥은의 출자자 중 상당수가 신한은행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간사이흥은의 처리 결과에 관계없이 신한은행 지분을 처분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은행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가 신한은행의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신한은행은 간사이흥은의 자회사인 대흥리스.대흥비즈니스에 85억엔을 대출해 줬으며 이 가운데 20%에 해당하는 17억엔을 충당금으로 쌓아뒀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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