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험생 시위까지 부른 수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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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능시험 결과의 뚜껑이 열리면서 변별력을 잃은 시험 출제와 이에 따른 '점수 인플레' 가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당황케 하고 있다.

논술고사와 면접 등 대입 준비에 한창 열중해야 할 수험생들이 서울 무역센터 앞에서 교육부를 성토하는 시위까지 벌였을 정도다.

어제 발표된 수능시험의 성적 분포는 학부모.수험생들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만점자가 66명이나 되고, 상위 득점자가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특히 수험생 전체의 평균점수가 27.6점이나 올랐다.

그러니 수능발표 전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대학 선택에 고심하던 숱한 수험생 가정이 넋을 잃거나 불안에 휩싸이는 건 당연하다.

올해 시험이 쉬웠거니 생각은 했지만 막상 결과가 나오자 고득점이든 아니든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시름에 잠기게 됐다. 그런 불안과 불만이 수험생들의 집단시위로 표출됐다고 봐야 한다.

우선 평균점수가 한해 사이에 30점 가까이나 대폭 높아진 것은 시험 출제의 기본을 일탈한 행위다. 한 입시 전문기관 분석에 따르면 서울 소재 대학에 지원하려면 인문계의 경우 최소 3백65점 이상 받아야 한다.

때문에 평균으로 치면 90점 내외에 해당하는 점수를 얻어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던 수험생 가정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또한 중상위권의 비슷한 점수대에 득점자가 무더기로 몰린 것도 수험생들의 불안요인이다. '도토리 키재기식' 점수 분포로 면접.논술고사의 비중이 크게 높아져 수험생들은 있는 돈 없는 돈 털어 고액 논술과외 등에 목을 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 수능시험은 미국식 수능시험(SAT)처럼 일종의 자격시험이 아니다. 따라서 변별력있는 시험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외 열풍을 잠재워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지도 못하면서, 우열까지 가리기 힘든 시험이라니 말이 되는가. 쉬운 수능이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논리는 현실적으로 허구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은 변별력이 낮은 문제들을 출제하고, 배점도 어려운 문제보다 쉬운 문제에 높게 두는 이해하기 힘든 수험 행정을 폈다. 수능시험 당일엔 평균이 3~5점 낮아질 것이라고 엉터리 예측을 내놓았고, 이제 와서는 구구한 변명이나 늘어놓고 있다. 관련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따라야 한다.

수능이 변별력이 없다면 다른 평가방법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대학들이 필답고사를 치르지 못하게 교육법 시행령을 고쳤다. 시행령은 대통령령이어서 국무회의 의결만 있으면 되니 다시 고쳐야 마땅하다.

당장 이번 입시에선 어렵더라도 2002학년도 입시부터는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필히 되돌려줘야 한다. 대학이 자율과 책임으로 학생을 뽑게 하는 게 시대 흐름에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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