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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술 선진국까진 갈 길이 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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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꿈의 꽃' 파란 장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장미는 노랑.분홍 등 여러 색으로 다양화됐지만 유독 파란 장미만은 인류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미국 등을 중심으로 유전자를 조작해 파란 장미를 '창조'하는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렇듯 인간의 꿈을 실현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근저에는 기술혁신이 자리잡고 있다. 남보다 먼저 기술개발에 성공한 기업과 국가에는 승자 독점원칙(A winner takes all)에 따라 막대한 경제적 부가 따르게 된다. 일찍이 폴 크루그먼이 "요소 투입형 성장의 한계는 기술혁신을 통해서만 돌파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듯이 선진국들은 이미 기술혁신을 통해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가가치의 질을 높여가고 있다. 일본은 한층 신장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조업의 부활과 신산업 창조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최근 우리 기업들도 기술혁신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 조선업체는 '대형 선박은 도크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맨땅에서 배를 만드는 신공법 개발에 성공했으며, 한 철강업체는 세계 철강사에 일대 변혁을 예고한 '파이넥스(finex) 공법'의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모두 기술 한국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빛나는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우리의 전반적인 기술수준은 선진국의 70~80%에 불과한 반면 중국이 우리를 바짝 뒤쫓고 있다. 그간 기술혁신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우리나라 전체 연구.개발 투자비는 자동차 Big 3인 포드.GM.크라이슬러의 연구.개발비를 합친 금액보다 적고, 핵심 원천 기술보다는 범용기술.공정기술에 치중하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

기술은 우리의 미래며, 기술의 속도가 바로 경제의 속도를 결정짓는다. 정부는'기술입국'을 통한 소득 2만달러 시대 달성을 위해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함과 동시에 국가기술혁신 시스템의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첫째는 창조적 장인(Creative craftsman)의 양성이다. 기술 개발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에게 달려 있다. 금속활자.측우기 등을 세계 최초로 발명한 우리민족의 피 속에 면면히 흐르는 장인정신을 이어받아 기술혁신을 선도해 나가는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핵심 기술(Core technology)의 선점이 필요하다. 그간의 기술추종 방식에서 벗어나 기술혁신을 선도하는 전략을 실행할 때다. 이를 위해 기존의 소형살포식 지원방식에서 벗어나 한정된 연구.개발 재원을 차세대 성장동력 등에 집중 투입해 핵심 원천기술의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셋째, 산학연 연계(Collaboration)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대학이 박사급 연구인력의 73%를 보유한 반면 연구.개발비의 76%는 기업에 집중돼 있는 부정합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호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 긴요하다.

넷째, 집적화(Clustering)를 통한 기술혁신이다. 핀란드.스웨덴 등 강소국은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참여정부 출범 이후 7개 산업단지와 대덕연구단지를 혁신 클러스터로 전환하는 작업을 착실히 추진 중에 있다.

마지막으로 기술문화(Culture)의 확산이다. 기술을 중시하고, 기술인을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때 더 많은 젊은이가 이공계에 자신의 미래를 담보할 것이며, 기술의 경제발전 기여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기술혁신 하부구조를 확충하고 기술 한국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결집할 때 우리나라는 21세기 동방기술지국(東方技術之國)으로 거듭날 것이며, 2만달러 시대는 어느덧 우리 곁에 와 있을 것이다.

이희범 산업자원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