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월요일이 최악인가 했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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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즈음 우리 정치를 보고 있노라면 톰 존스의 단편소설 '갑작스런 추위' 에 인용된 유명한 블루스곡 '스토미 먼데이(최악의 월요일)' 의 노랫가사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They call it stormy Monday, but Tuesday' s as bad (모두들 월요일이 최악이었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화요일도 별반 다를 바 없네' 라는 가사가….

정말 이 노랫가사처럼 지금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는 월요일이 최악인 줄 알았더니 화요일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위기의 연속이다.

우리 국민은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IMF를 최악의 월요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IMF 극복은 희망의 화요일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노벨상의 영광에도 불구하고 화요일도 월요일과 별 다를 바 없는 위기의 연속일 뿐이다.

아니 문제는 화요일이 더 나쁘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월요일에는 '금모으기' 와 같은 국민적 의지의 결집으로 탈출구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화요일에는 존스의 '갑작스런 추위' 처럼 효과적인 탈출구가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 나라가 위기의 탈출구 찾기에 비상이 걸려 있다. 지금까지는 공적자금 얼마 쏟아넣고 하는 식의 정책적 차원의 처방전 마련에 부심했지만 이제는 대통령의 결단과 같은 통치차원의 처방전이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처방전이 과연 약효가 있을 것인가 하는데 있다. 왜냐하면 민심이 너무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위기에 금 모으기와 같은 운동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국민이 3분의 2를 넘어서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말해주듯 국민은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도, 시장에 대한 신뢰도,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상실한 상태다.

대통령은 우리에게 숱한 공약을 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공약들을 또한 식은 죽 먹듯이 뒤집어 온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정말 국민은 불안해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결단은 국민의 신뢰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신뢰회복의 첩경은 하루 빨리 '전리품 정치' 를 청산하는 일이다. 정당정치에서 정치의 전리품화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통령과 텔레파시가 통하는 인재들이 경직된 관료제에 창의적인 역할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전리품 정치는 너무 낭비적이고 부패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전리품 정치 때문에 김영삼 정부가 망했고, 김대중 정부가 몰락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리품 정치의 본산은 가신(家臣)정치다. 가신정치의 본질은 국가에 대한 충(忠)대신 보스에 대한 충, 즉 효(孝)의 우선화에 있다.

어떻게 보면 이 가신정치는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 자기 보스나 집단에 대한 충성(효)을 우선시하는 우리 가치체계의 산물이다.

자기집단이나 보스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은 살아 남을 수 있어도 공공이익이나 국가이익을 도모하는 사람은 살아남기 어려운 사회다. 지역주의나 학연이나 기타 연(緣)이 맹위를 떨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화는 다름 아닌 억압적 국가의 민주화와 더불어 가신적 사회가치의 민주화를 의미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개혁의 이름아래 가신적 가치체계를 정당화했고 김대중 정부는 기득세력의 저항 분쇄를 위해 이를 강화했다.

이 결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거창한 국정 슬로건은 법의 지배와 시장경쟁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가신집단의 이익 정당화 이데올로기로 변질돼 버렸다.

일반 국민을 시장경쟁의 낙오자로 낙인찍어 거리로 내몰면서도 자신들의 패거리는 퇴출 정치인이라도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이른바 가신적 정(政)-관(官)-재(財)-지(知) 지배 공동체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결과는 개혁의 범위를 넘어서는 터지면 "억(億), 억(億)" 하는 대형 부조리요, 부패의 구조화다.

金대통령은 지금 중대한 결단의 기로에 서있다. 가신정치를 청산하면 당이 위태로울지 모르지만 가신정치를 청산하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다. 미래의 책임정치를 위해서도 대통령의 결단이 요구된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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