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방송의 '카프카예스크' 행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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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거가 끝난 지 3주가 넘었는데도 결과가 모호한 이번 미국 대선을 두고 누구는 '카프카예스크' (카프카의 소설같은)라는 표현을 썼지만, 우리는 한국 방송 3사의 최근 행태를 보면서 이 표현을 떠올리게 된다.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 민간 상업방송인 SBS,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성격의 MBC. 이들 지상파 방송 3사가 보여주는 '경쟁과 공조' 관계는 부조리와 악몽이 판치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감이다.

시청률 경쟁을 위해서라면 진흙탕 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대통령 홍보' 에 관한 문제에서는 어쩌면 그렇게 협조적인지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된다.

프로 스포츠 중계권을 둘러싼 3사의 죽기 살기식 이전투구(泥田鬪狗)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시상식 중계방송을 둘러싼 '아름다운 공조' 가 너무 대조적이다.

MBC는 박찬호 선수가 등판하는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액수 미상의 거액을 주고 독점 계약함으로써 3사간 합동방송 시행 세칙을 먼저 깼다.

시청률 앞에서는 약속 파기도, 외화 낭비도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이다.

뒤통수를 맞은 KBS는 사실상 SBS와 손잡고 국내 프로야구.축구.농구 등 메이저 3개 종목의 중계권을 독점 계약했다.

꽉 짜인 정규 프로그램의 제약 속에서 온종일 스포츠 중계만 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프로 스포츠 활성화라는 명분도 납득키 어렵다. MBC에 대한 화풀이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MBC는 당초 1만달러에 따낸 노벨상 시상식 독점 중계권을 포기하는 '미덕' 을 보여줬다.

그 결과 중계권 대행사는 KBS와 SBS에 각각 3만달러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시상식을 보고 싶은 국민으로서는 채널 하나면 족하다.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이 3개 채널에서 동시 방영됨으로써 아까운 외화와 전파만 낭비되는 셈이다.

지난 9월 '방송의 날' 대통령 특별회견에서도 3사는 공조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다.

지상파 3사의 짜증나는 '카프카예스크' 행태를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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