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풍경] 서울 대치동 '해초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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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보통 주부들의 외식은 자의적이기 보단 타의적이다.

아이들 손에 이끌려 가는 패스트푸드점이나 남편이 가끔 선심(□)쓰고 데려가는 음식점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동네를 벗어나 친구나 동창생끼리 점심이라도 한끼 하려면 어느 곳을 가야 할 지 모르고 서로 우왕좌왕하는 일이 잦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해초록(02-3452-2527)은 주부들끼리 찾아 볼 만한 음식점이다. 언뜻 보기엔 일식집같지만 생선회가 있는 한정식집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잔뜩 쌓여 있는 늙은 호박들이 반갑고, 서양식 식탁과 의자 대신 퍼질러 앉을 수 있는 교자상과 방석이 정겹다.

게다가 엉덩이를 데워주는 온돌과 도란도란 떠들어도 부담없는 아늑하고 깔끔한 방이 있어 즐겁다.

이 집의 추천메뉴는 점심 특선정식. 주문이 끝나면 옹기 뚜껑에 장미로 장식한 생선회가 상위에 오른다. 광어.도미.우럭 등이 각각 담박하고 고소한 맛을 뽐낸다.

새콤한 알로에 초무침으로 입맛을 돋운 뒤 생선회를 한 점씩 초고추장.고추냉이 간장.쌈장에 싸서 입에 넣는다.

초고추장의 매콤하고 새콤함, 고추냉이 간장의 톡 쏘는 산뜻함, 쌈장의 거칠고 구수함이 같은 회라도 다른 맛을 연출한다. 함께 나온 멍게.생굴.문어도 신선하다.

이 때 말만 잘하면 산낙지도 추가된다. 횟감이 떨어질 때쯤이면 이 집 메뉴의 간판스타인 단호박부침을 비롯한 10여가지 반찬이 뒤를 잇는다.

대문 앞에서 반기던 늙은 호박을 얇게 채쳐 노릇노릇 부쳐낸 것인데 달콤한 맛에 매료된 여성손님의 '추가 요구' 가 빗발친다.

이어 회를 뜨고 난 광어뼈로 푹 끓여낸 미역국 솥단지와 압력밥솥째 들여온 잡곡밥은 뚜껑을 열자 냄새부터 구수하고 시원하다.

뒤따라 상에 오른 청국장 냄새도 수저질을 재촉하기에 충분하다. 누룽지에 곁들이는 깍두기나 어리굴젓 맛도 괜찮다.

후식으로 나온 멜론과 매실차를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에 놀라 서둘러 외투를 챙기게 된다.

점심 특선정식 값은 2만원. 가정 주부에게는 부담스런 가격이지만 오랜만에 자리가 만들어진 연말 모임이라면 남편의 지갑에 짐을 지어도 될 듯하다.

네명 내지 여섯명이 들어갈 방이 21개. 손님 수가 많으면 방을 터 한방에서 50명까지 소화할 수 있다고. 오전 11시30분 문을 열어 오후 10시30분에 닫으며 쉬는 날은 없다.

주차공간도 걱정할 것 없으나 지하철 삼성역에서 걸어도 될 만한 곳에 있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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