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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2. 하천 황폐화 원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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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안양 시민 고상준(高相俊.45)씨가 살던 곳은 안양 남초등학교 부근. 현재는 아파트가 밀집돼 있지만 과거에는 대부분 농지였다.

그는 1970년대 초까지 안양천의 지류인 학의천 부근 개천에서 멱감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개천 깊이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허리까지 올 정도로 물이 찼고 안양대교 부근은 물이 많아 아이들이 다이빙하고 놀 정도였다.

강가에서 밤에 횃불을 들고 가재를 잡으면 한 양동이가 가득 찼다. 그러나 이곳 물은 80년대 초반 군포공장이 들어서며 더러워지기 시작, 평촌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던 80년대 후반 이후엔 수량이 감소하고 수질도 급격히 떨어졌다.

지금은 강 주변에 콘코리트 제방을 쌓아 가까이 가기도 어렵고 하천 양 옆으로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물 위에는 하얀 거품이 떠다니고 하천 바닥에는 듬성듬성 수초가 보일 뿐이다.

게다가 오.폐수를 끌어가기 위해 강 양쪽에 묻은 차집관로가 관악산 자락에서 나오는 깨끗한 계곡물까지 몽땅 차집해 하수처리장으로 보내기 때문에 물이 거의 없었다. 곳곳에 물 고인 웅덩이만 널려 있어 취재팀이 유속측정기로 수량을 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서울 YMCA 박흥철 간사는 "하천의 원수(原水)까지 한꺼번에 모아 끌어가는 차집관이 설치된 지점 이후부터 하천의 건천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며 "서울의 반포천.성내천.월곡천.불광천 등에도 대규모 차집관이 설치된 뒤에는 물이 전혀 없는 사막화 상태였다" 고 말했다.

안양천은 군포에서 흘러들어오는 맑은 내와 평촌에서 흘러오는 학의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오염이 극에 달했다. 이곳도 아파트와 상가로 밀집돼 있다.

강은 복개돼 일부는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나 악취가 심해 휴일에도 강 주변을 거닐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처럼 난개발.복개.인구팽창 등 무분별한 도시화와 소홀한 산림관리가 우리 생활의 터전이었던 하천을 망가뜨리고 있다.

지난 중순 취재팀이 둘러본 탄천 역시 자연하천의 모습을 잃고 도시하천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탄천의 지류인 분당천 주변에는 열병합 발전소, 운중천에는 체육관.군부대, 야탑천에는 보존녹지임에도 공장들이 상당수였다.

특히 동막천은 난개발이 상류까지 이어졌고 공장과 식당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지난 7월 말 취재팀이 동막천의 최상류인 광교산 기도원을 방문했을 때는 엽새우.도룡뇽 등 1급수에 사는 수생생물들이 눈에 띄었으나 지금은 강물이 말라붙어 황량한 느낌까지 주었다.

왕숙천도 경기도 포천.남양주.구리 등 요즘 급격히 인구가 늘고 있는 지역을 흐르면서 점차 도시하천으로 바뀌고 있었다.

환경운동연합 백명기 남양주지회장은 "남양주에서 하천오염이 가장 심한 곳은 인구가 지난 10년새 13만명에서 33만명으로 늘어난 곳" 이며 "원래 논만 있던 곳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강이 죽고 있다" 고 말했다.

경기도 의정부시 송탄 택지개발지구도 옛모습을 잃기는 매한가지다. 아파트 건축 기초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여름 이곳은 구릉지대였던 주변 지역 산들을 모두 깎아내 평탄해졌다.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공사장에 쌓인 흙들이 금세 하천으로 휩쓸려 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택지 개발지구를 가로지르는 중랑천 상류는 하천 직강화 공사를 이미 끝내 콘크리트로 하천 양쪽 사면을 포장하고 하로(河路)를 확장해 놓았다. 몇년 전만 해도 산 한 가운데를 굽이쳐 흐르던 강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취재팀은 지난 6~9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강근 교수팀.한국환경수도연구소와 함께 중랑천 등 한강 5개 지천의 상류에서 하류로 이동하면서 각각 8개 지점을 선정해 수량.수질 등을 조사했다.

결론은 도시화가 심화할수록 하천의 수량이 줄어들고 수질이 형편없어지는 것이었다.

중랑천은 의정부에서 시작, 서울 노원구.중랑구를 지나는데 의정부 시가지에서 초당 0.28㎥에 불과하던 수량이 시가지를 벗어나 자연녹지지대를 흐르면서 1.83㎥로 여섯배 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도시화한 중랑구 장안교 아래를 통과할 때는 수량이 다시 초당 1.14㎥로 감소했다.

도시화로 인해 물을 저장하고 있어야 할 숲과 토양이 없어지고 도시 공간이 아스팔트로 포장돼 물이 지하로 스며들 수 없기 때문에 하천 수량이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기획취재팀=박태균.김현승.홍주연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 [기획취재] 전국하천이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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