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전문지 '포에지' 서정주 특집서 엇갈린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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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병상에 누워 있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 미당(未堂)서정주(徐廷柱.사진)씨의 삶과 문학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한쪽에서는 미당의 시를 우리 겨레의 가장 깊은 정서를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 민족시의 최고봉으로 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당이 친일파고 신군부에 부역했던 기회주의자로 보고 있다. 이렇게 시와 삶을 떼놓고 보며 찬사와 비난이 엇갈리고 있는 미당에 대해 시를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평론들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에 나온 계간 시전문지 '포에지' 겨울호는 특집으로 '서정주 새롭게 읽기' 를 꾸몄다.

이 특집에서 문학평론가 황현산씨는 '시적 허용과 정치적 허용' 이란 글을 통해 "시어와 시적 착상으로 볼 때 미당의 친일이나 신군부에의 부역은 어떤 사상의 표현이나 어떤 신조의 결과로 보기는 어렵고 별 생각 없이 한 것" 이라 밝혔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라는 '국화 옆에서' 한부분을 분석하며 황씨는 특히 사투리 '인제는' 에 주목했다.

'이제는' 이 아무리 애끓였던 방황도, 어떤 투철한 반항이나 탈출의 열망도 때가 되면 다소곳이 수그러들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기정사실화한다면, '인제는' 이라는 사투리에 실리는 토착정서는 늘 그렇게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인습적 감정의 지지 아래 논리와 시비를 건너뛸 수 있는 힘까지 덧붙여준다는 것이다.

황씨는 "미당에게 있어서 시의 허용이 모든 시비의 곡절과 높낮이를 평면화하고 정열과 의식의 예각을 둥글게 만드는 토착방언의 허용과 같은 것" 이라며 "사람살이가 늘 그런 것이라고 눅진하게 말하는 자리에 죄는 없다" 고 밝혔다.

그러면서 황씨는 "미당의 언어는 여전히 중요하다. 혈연과 지연의 토착정서에 호소하여 모든 논의의 외각에 서는 말들을, 우리의 시들은 그 운명의 기로에서 아직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 강조했다.

한편 같이 실린 글 '초월 미학과 무책임의 사상' 에서 문학평론가 구모룡씨는 "미당은 모든 문제를 초월의 지평으로 환원함으로써 사회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희석시키고 있다" 고 비판했다.

구씨는 일제하에서 쓰여진 미당의 초기 시들을 "식민지 현실에 대한 원초적 저항이 아니라 도피" 라고 주장했다.

한편으론 가장 구체적인 감각에 의존함으로써 구체적 현실을 대신하고 다른 한편으론 관능미의 극점을 추구함으로써 미학적 위계를 만들어 현실을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미당에게서 미학은 죄의식이 결여된 원죄다. 미당의 형이상학적 초월 미학은 고통을 감당하면서 죄의식과 씨름하는 이 땅의 많은 시인들에게 죄의식의 원천이 되었다. 더 이상 초월이 무책임을 호도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 고 구씨는 한국시의 최고 경지라는 평가를 받는 미당의 초월의 시세계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일제와 분단과 독재를 살았던 지난 세기의 역사로부터 아직 그 누구, 어떤 논의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미당 시의 새로운 논의들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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