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의회, 후지모리 해임 의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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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페루 의회는 21일 일본에 체류하면서 팩스로 사직서를 제출한 알베르토 후지모리(62)대통령을 '도덕적 결함' 을 이유로 파면하기로 의결했다.

의회는 12시간 이상 격렬한 논의 끝에 파면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62 대 반대 9, 기권 9표로 통과시켰다.

의원들은 일본에서 팩스로 사임서를 접수시킨 후지모리의 행위를 "품위를 잃은 배신" 으로 규정하면서 격렬히 비난했다.

탄핵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과도정부가 출범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파면을 의결했다.

파면안이 가결되자 환호한 의원들은 의사당 발코니로 나가 페루 국기를 내걸면서 "독재는 무너졌다" 고 외쳤고 리마시 곳곳에서 후지모리 독재종식을 축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로써 후지모리 10년 독재는 공식 종언을 고했으며 새 대통령 선출 때까지 임시 대통령이 국정을 담당하는 과도정부 시대로 접어들었다.

의회는 22일 회의를 열고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발렌틴 파냐과 국회의장을 선출할 예정이며 파냐과는 내년 4월 대선에서 뽑힐 새 대통령이 정부를 구성할 7월까지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편 의회의 후지모리 파면과 대통령 권한대행 선출 이전인 20일 밤 부모 이혼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 온 딸 게이코 후지모리가 이삿짐을 꾸려 대통령궁에서 리마 시내 어머니 집으로 이사했다.

후지모리의 전 부인이자 야당 의원인 수산나 히구치는 21일 "후지모리가 일본.페루여권을 모두 갖고 있는 이중 국적자며 대통령 재임시 부정 축재한 재산을 현재 일본 도쿄의 은행들에 비밀리에 예치했다" 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일부 언론은 후지모리가 1천8백만달러를 일본은행에 송금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히구치는 페루언론과의 회견에서 "후지모리가 일본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일본 정부에 새삼스럽게 망명을 요청할 필요도 없다" 고 말했다.

그녀는 "후지모리가 정보부원들을 동원해 나를 암살하려고까지 했지만 아이들 문제로 이를 참아오다 1996년 하는 수 없이 이혼했다" 고 말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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