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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법정권위는 꾸지람보다 올곧은 판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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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재판 중 나이 든 원고에게 “버릇없다”고 한 판사의 행위를 인권침해로 결정했다. 해당 법원장에게는 재발 방지책을 세우도록 권고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한 ‘판사 자질론’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무척 씁쓸하다.

당시 판사는 39세, 질책을 받은 원고는 68세다. 아버지뻘이다. 원고가 재판 중에 허락도 없이 끼어들자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느냐”고 꾸지람을 줬다는 것이다. 아들뻘인 판사에게 “버릇없이”란 질책을 들은 원고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판사는 “법정 예절을 지키라고 주의를 줬으며, 재판장의 법정지휘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물론 어떠한 경우도 재판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판사의 어투에 혹여 ‘영감님’으로 불리던 시절의 권위의식이 배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재판은 인간이 인간을 재단(裁斷)하는 사회적 행위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한 이유다. 법조문만 달달 외운다고 능사가 아니다. 부조리한 인간의 행동과 태도에 대한 통찰이 요구된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르고, 죄의 무게를 다는 판결 과정을 구도(求道)에 비유한다. 그 종착점은 공감과 승복이다.

마침 엊그제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앞으로는 일정한 경력이 있는 법조인 중 법관을 임용하도록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대법원도 로스쿨 졸업생이 배출되는 2012년까지는 신규 법관의 50%를 이런 방식으로 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최근 일부 단독 판사들의 독단 판결이 사법 불신을 초래하고 있는 가운데, 나름대로 법관 자질 향상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 다행스럽다.

판사의 자질 못지않게 일반인의 법정에 대한 예의도 중요하다. 나이가 어리다고 재판장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최근 4년간 법정에서 욕설을 퍼붓거나 소란을 피운 사례가 186건이다. 특히 용산사건 재판 때는 극에 달했다.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범죄이며, 법치 파괴 행위다. 법정의 격(格)은 그 사회의 성숙도를 재는 시금석이다. 사법부의 진정한 권위를 세우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