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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프로 라이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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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듣기 불편한 직접적인 표현 대신 우회적으로 뜻을 전달하는 게 완곡(婉曲)어법이다. ‘죽었다’를 ‘돌아가셨다’로, 감옥을 교정시설로 표현하는 것이다. ‘해우소(解憂所)’에 걸린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란 글귀 역시 완곡어법이다.

반면 더블스피크(doublespeak)는 일부러 애매하게 표현하는 어법이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성(性)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용어를 에둘러 피했지만, 솔직하지 않은 ‘부적절한 표현’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언어의 화장(化粧)이랄까. 미국은 1983년 그레나다에 공정부대를 이용해 ‘미명(未明)의 수직적 삽입’을 했다고 발표했다. 애써 ‘침공’이란 표현을 피했다. 민간인 사상자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했다. 미국의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은 이라크 포로 학대와 관련해 ‘고문’을 ‘인간이 감내하는 인간성의 과도함’으로 표현해 빈축을 샀다. 대량 해고를 구조조정이나 다운사이징으로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부정적인 인상을 감추거나 지우려는 것이다.

근래 세계 곳곳에서 낙태를 두고 ‘프로 라이프(pro-life)’와 ‘프로 초이스(pro-choice)’ 간 논쟁이 뜨겁다. 프로라이프는 말 그대로 ‘생명 지지’이다. ‘낙태 반대’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낙태’란 용어가 ‘태아 살해’의 범죄성을 은폐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태아살해 반대’인데, 이 역시 듣기에 불편한 용어여서 ‘생명 지지’를 택했다. 여기에는 낙태를 여성의 행복추구권이자 자기결정권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쪽의 논리를 짐짓 외면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낙태 대신 ‘생명’을 내세우면 이를 반대하는 쪽은 자칫 ‘생명 반대’로 몰리는 것이다. 전형적인 더블스피크다.

그러자 ‘낙태 허용’도 용어를 바꾼다. ‘선택 지지’이다. ‘생명 지지’와 같은 논리다. 낙태 찬성을 가리고 여성의 선택권 옹호를 내세운다. 태아의 생명과 죽음에 관한 논쟁을 슬쩍 피하면서, 상대를 ‘낙태 반대’가 아니라 ‘여성의 선택권 반대’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수술을 한 병원을 고발하면서 프로초이스와의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차제에 생명과 선택을 통섭하는 프로휴머니티(pro-humanity)의 지혜를 기대한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