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의 거사' 폭풍속의 일본 자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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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피 말리는 한판 승부였다. 모리 요시로(森喜朗)내각 타도에 나선 자민당 비주류와 이를 저지하려는 주류의 다수파 확보 싸움은 20일 저녁 야당이 불신임안을 낼 때까지 이어졌다. 그래도 가.부결의 윤곽은 확실치 않다. 반란을 주도한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전 간사장은 "가결 승산이 있다" 면서도 "결과는 신밖에 모른다" 고 말했다.

주류는 불신임안 동조 의원 제명 카드로 비주류를 뒤흔들었다. 찬성표를 던지면 출당(黜黨)한다는 것이었다.

불신임안 표결이 기명투표로 이뤄지는 점을 이용한 전술이다. 이미 찬성 의사를 밝힌 가토와 야마사키 다쿠(山崎拓)전 정조회장에게는 표결전 제명 권고안을 냈다.

가토.야마사키 제명 문제는 엎치락뒤치락했다. 주류파의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간사장은 당초 제명처분 시한을 이날 정오쯤으로 잡았다.

그러나 저녁까지 가토파 간부와 회담을 가졌다. 사전 제명은 자민당 분열로 직결되는 폭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가토파 일각이 무너져내렸다. 가토에게 파벌을 물려준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대장상과 이케다 유키히코(池田行彦)전 외상을 비롯한 중진 10여명이 딴 살림을 차릴 움직임에 들어갔다.

화(和)를 통한 조정보다 이념.정책을 중시해온 가토의 한계이자 반란의 대가이기도 하다. 가토로선 당에 남든 당을 떠나든 큰 타격을 받게 됐다.

그러나 소장파 10여명은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나카다니 겐(中谷元)자치성 정무차관은 사표를 내고 보스를 따르기로 했다.

같은 비주류의 야마사키파의 불신임안 동조 의원은 10여명을 헤아렸다. 가토.야마사키는 주류의 회유공작에 맞서 막판까지 결속을 다졌다.

그러나 주류파의 고민도 적지 않았다. "탈당은 하지 않겠다" 고 공언해온 가토.야마사키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면 동조의원을 끌고 나가 자민당의 집권 자체가 흔들거리기 때문이다.

노나카가 가토 반란 이후 "상처를 최소화해야 한다" 고 되뇌어온 것은 이와 맞물려 있다. 가뜩이나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은 대화에 의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지지율이 바닥에 떨어진 모리가 자진사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는 것을 막기 위한 고강도 처방에 대한 여론도 곱지 않다.

마이니치(每日)신문 조사 결과 가토의 행동을 지지하는 비율은 54%나 됐다. 그래서 주류파는 표결 직전까지도 타협을 모색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온 양면작전이다.

불신임안 표결 결과에 관계 없이 모리내각의 사퇴는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가토의 거사는 모리에 등을 돌린 민심을 버팀목으로 삼았고 그가 가만히 기다렸으면 가장 유력한 모리 후임이었기 때문이다.

상처투성이의 모리를 얼굴로 내세워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선전할 수 있다고 보는 의원은 거의 없다.

표결 후에는 자민당의 분열 가능성도 점쳐진다. 주류와 비주류의 감정적 대립은 전례없이 극에 달했다.

자민당 주류파가 이번에 '수의 논리' 라는 케케묵은 정치 수법을 그대로 쓴 것은 비주류의 이탈보다 자민당을 위기로 내몰 수 있다.

표결 전야에 자민당의 텃밭인 도치키현 지사선거에서 무당파 후보가 지사에 당선됐다. 나가노현 지사선거에 이은 지방에서의 잇따른 무당파 반란이다. 내년의 참의원 선거는 자민당류 정치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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