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유엔 서명한 합의서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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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7일 북한과 유엔사가 서명한 합의서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29번째로 내용은 간단하다. 그러나 상징적인 의미는 그 어느 때 것보다 크다.

제한된 지역이지만 남북한이 우발적인 충돌 등 군사적 문제를 놓고 직접 머리를 맞댈 근거가 처음으로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는 평화체제 실험과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북한과 유엔사는 한달여 줄다리기 끝에 ▶경의선 공사 인근의 비무장지대(DMZ) 일부구역을 개방, 남북 관리구역으로 하고▶이 지역 내에서 제기되는 기술.실무.군사적 문제를 남북 군당국이 처리토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승강이의 핵심은 유엔사 권한의 남측 이양 정도를 둘러싼 관할권(jurisdiction)과 관리권(administration)의 대립이었다.

북측은 "남북문제는 남북이 풀어야 한다" 며 완전한 이양을 요구했고, 이에 유엔사는 "관할권은 이양대상이 아니다" 는 입장으로 맞섰다.

주한미군을 포함, 스스로의 존재이유인 정전협정 체제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유엔사는 그러면서 남북관계가 개선돼 가는 분위기를 감안, '관리권' 개념을 들고 나왔다.

국방부 관계자는 "소유권을 내줄 수는 없지만 전세(專貰)는 가능토록 해주겠다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북측은 남북 협의대상에 군사적인 문제가 포함되자 단순한 행정적 관리권한은 넘어선 것으로 보고 이에 응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형식은 관리권 이양이지만 내용은 사실상의 관할권 이양" 이라며 "양측이 명분.실리를 놓고 서로 하나씩 주고 받은 것" 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군은 합의서에 '정전협정에 따라…' 등의 문구가 포함되고 지난해 9월 이후 중단된 장성급 회담이 개최됨으로써 정전협정 유지를 위한 대화창구가 재가동된 점을 평가하고 있다.

또 경의선 공사와 관련한 남북 군사 실무접촉이나 2차 국방장관 회담이 가시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군사접촉에서 우발충돌시 양측의 대응방안 등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한다는 것이 우리측 복안이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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