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쉬운 수능' 스트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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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해 프로야구에서 타격왕을 거머쥔 현대 박종호 선수의 타율은 3할4푼. 열번 타석에 들어서서 서너번 정도 안타를 쳤지만, 야구 선수 중 타율 1등이다.

지난해 서울대 특차에서 탈락한 3천여명의 수능성적은 3백80점 이상. 4백번 타석에 들어서 3백80개 이상 안타를 날린 셈이니 타율로 치자면 9할5푼에 해당하지만 불합격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처럼 점수를 잘 받아도 끊임없이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이 올 입시에서는 더욱 심화될 것같다. 수능 가채점 결과 고득점자 수가 지난해보다 훨씬 많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16일 서울 D고의 한 학생은 "친구들은 점수가 다 올랐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고 탄식했다. 모의고사보다 5점 정도 더 잘 나와 3백90점을 받았다는 한 재수생은 "내 위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몰려 있을지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고 말했다.

1998년부터 쉬운 수능은 고교 교육정상화와 과외 추방을 위한 특효약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수능이 끝나자마자 학원들은 '논술 특별반' 을 조직하고 학생들을 불러 모은다. 학생들은 고 1.2때엔 내신성적을 높이기 위한 내신 과외, 고3 때엔 수능과외에 이어 논술과외까지 받아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대 김성인(金成寅)입학관리실장은 "쉬운 수능으로 학생들은 실수하지 않는 연습에 매달리고, 대학은 소수점 둘쨋자리까지 성적을 따져 학생을 선발하는 비교육적인 상황이 매년 벌어지고 있다" 고 말했다.

그렇다고 수능의 난이도를 높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현행 제도아래서는 쉬우면 쉬운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과외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 끊어야 할까. 서울시내 대학 입학처장들은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뽑을 수 있도록 자율적인 선발도구를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입시 전체를 관장하려 할 것이 아니라 선발에서 교육까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줄세우기식 수능이 아니라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파악하는 선발도구를 개발해야 하고, 정부는 대학에 자율성을 주되 수험생들의 입시 준비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쪽으로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홍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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