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최동호 '달마의 등불-달마는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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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수묵빛 산길을 감싸고 돌아온 어둠의 팔굽이가

남빛 연기 피워 올리던 산 그림자의

마지막 고요 한 자락 껌벅 눈감는 불꽃에 덮고

모닥불이 한숨처럼 내뱉는 바람은

빗자루 갈퀴가 다 쓸지 못한 제 어깨의

제 부스러기 쓰다듬고

구르다가 멈춘 나뭇잎 한 장이

숨죽인 달마의 눈썹마저 정지시켜 놓았는데

아직도 목마른 육신 꺼버리지 않고

- 최동호(52) '달마의 등불-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중

산첩첩 물첩첩 넘어가면 거기 티끌세상과 문닫고 앉아 동안거(冬安居)에 들 돌부처 하나 계실까? 그 부처님 속으로 뇌이는 화두 하나 있어 삼라만상이 모두 헛것인 채 바람 불고 잎지는 것 무심할 수 있을까. 달은 서쪽으로 가고 달마는 동쪽으로 간다? 그 등불을 따라가며 화두의 이파리를 줍는 길손이 있고.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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