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 "역전 발판 마련" 표정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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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의 선관위가 12일(현지시간) 수작업으로 다시 재검표를 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선거 혼란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당초 초조해 하던 앨 고어 후보 진영과 느긋해 하던 조지 W 부시 후보 진영의 분위기가 뒤바뀌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선관위의 결정이 발표되자 지나친 법정 투쟁으로 인한 헌정중단 사태를 우려한 언론과 민주당 내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속앓이를 하던 고어 진영은 "극적인 역전 드라마의 발판을 마련했다" 며 고무된 분위기다.

고어는 이 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일요일인 12일 평소에 잘 나가지 않던 교회 예배에 참석,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고어가 최근의 대치 국면과 관련한 질문에 "노 코멘트" 로 일관하자 주변에서는 "일찍이 이처럼 조용한 고어를 본 적이 없다" 는 소리가 오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위기에 몰린 부시 진영은 당혹감과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부시는 12일 텍사스주 크로퍼드 인근 자신의 목장에서 딕 체니 전 장관과 함께 기자들과 만났으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고 말했을 뿐 발언을 삼갔다.

하지만 "개표를 세 번이나 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첫 개표와 재검표에 이은 수작업 개표를 가리킨 것. 그는 자신의 애완견이 짖자 "우리 개도 재검표를 빨리 끝내라지 않느냐" 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첫 개표 결과 고어가 이긴 것으로 나타났으나 수백표의 적은 표차 때문에 역시 재검표를 실시한 뉴멕시코주에선 부재자표를 제외한 중간집계 결과 부시가 당초보다 3백55표를 더 얻어 결국 17표차로 결과가 뒤집혔다. 뉴멕시코주 경찰은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추가 재검표에 대비해 투표함 보전에 들어갔다.

경찰은 "공화당측 변호사가 법원에 투표함 보전 신청을 내자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 고 밝히고 "하지만 아직 추가 재검표 요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 전했다.

○…부시측은 마이애미 연방지법에 낸 수작업 개표 중단 가처분 신청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으나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많다.

정치 분석가들은 "일부 카운티만의 수작업 재검표는 헌법상 권리에서 다른 지역 유권자들과의 차별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부시측 주장이 일리가 있다" 면서도 "연방법원은 개표가 아닌 협박.사기 등 유권자의 권리와 관련한 사항이 아니면 주당국에 개표를 일임하고 있어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고 전망하고 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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