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플로리다 재검표 현장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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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 대선 사상 초유의 재개표 상황을 놓고 미국이 숨죽이고 있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언론은 이번 선거로 미국이 심각한 분열현상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고 있다.

◇ 플로리다 현지 표정〓9일 오전 1시(현지시간) 플로리다주의 주도(州都)탤러해시 주청사. 평상시 같으면 암흑이어야 할 이곳은 대낮처럼 불이 밝혀져 있다.

직원들이 67개 카운티의 재검표 결과를 집계하기 위해 야근작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당일보다 훨씬 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주청사 앞에는 방송차량과 취재진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평상시 오후 10시면 문을 닫는 청사 인근 먼로 스트리트의 식당과 바들도 재검표 때문에 탤러해시를 방문한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고어 진영은 이날 재검표 결정이 내려진 직후 70명의 자원봉사자를 플로리다주 카운티별로 파견해 재검표 상황을 참관토록 했다.

또 플로리다주 주지사가 조지 W 부시의 친동생인 젭 부시란 점을 감안한 듯 워런 크리스토퍼 전 국무장관을 고어 캠페인 본부의 '재검표대책위원장' 격으로 현지에 급파했다.

택시기사 밥 리치먼(55)은 "지난 8시간 동안 공항에서 주정부 청사까지 태운 손님만 15명" 이라며 "고어가 예기치 못했던 특수를 안겨줬다" 며 싱글벙글했다.

주청사 앞에서 만난 래리 브라운(56)은 "민주당 지지세가 확대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공화당 지지 주민들은 민주당이 괜한 트집을 잡아 공화당 승리에 발목을 잡고 있다며 언짢아 하고 있다" 고 말했다.

탤러해시 주민들은 조용했던 자신들의 도시가 갑자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데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CNN 등 전 미국의 언론이 시간대별로 내보내는 보도 내용이 앞으로 이 도시의 관광산업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의식한 듯 신경을 쓰는 표정이다.

플로리다 A&M대 3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제임스 바우처(22)는 "내가 던진 한 표가 이렇게 의미있는 줄 미처 몰랐다" 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유권자들이 대부분 선거에 큰 관심이 없는데 이번 선거를 통해 자신들이 던진 한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을 것" 이라며 "특히 플로리다 주민들에겐 더욱 그렇다" 고 말했다.

◇ 부시 캠프〓8일 오후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텃밭인 텍사스주 오스틴시는 조용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날 오후 도심 콩그레스가(街) 주하원 건물에 있는 부시 후보의 선거 운동본부는 외부인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 채 초조한 모습으로 플로리다를 주목하고 있었다.

운동본부 홍보담당자는 "특별히 예정된 일정이나 선거 관련 새로운 상황이 있느냐" 는 질문에 "우리도 내일의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고 대답했다.

부시 후보측은 최후의 승리가 자신들이 된다고 내다보고 있다. 잠정 개표 결과에서 1천7백여표 앞서는 데다 군인 등 해외부재자 투표자들의 성향이 통상 '친 공화당' 이라는점 때문이다.

이에 앞서 오후 1시 부시 후보는 주지사 관저 정원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재검표가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가 승리할 것을 기대한다" 고 말했다.

부시측도 재검표 작업 참관을 위해 고위 간부들을 플로리다에 급파했다. 오스틴 시내는 함성은 사라졌지만 거리의 시민들은 모두 "플로리다" 와 "부시 승리" 를 이야기하고 있다.

탤러해시〓신중돈 특파원, 오스틴〓윤석준 기자(LA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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