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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 보수, 규제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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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경제학자 루디거 팔렌브라크와 르네 슈툴츠가 2006~2008년 약 100개의 거대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이 가설을 검증해 봤다. 2006년 CEO들은 평균 360만 달러(약 42억원)의 현금 보상을 챙겼는데 이는 전체 보상액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나머지는 주식과 스톡옵션으로 받았다. 또한 당시 그들은 평균 8800만 달러어치의 주식과 스톡옵션을 보유하고 있었다. 집으로 들고 간 돈다발보다 회사에 묶인 액수가 24배나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막대한 현금 보상이 경영자들로 하여금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든 유인이 될 순 없다는 게 분명해진다. 2006~2008년 자기 회사 주가가 하락하는 바람에 이들 CEO가 평균 3100만 달러의 손해를 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위기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경제학자는 금융위기 전에 추진된 지나친 통화팽창 정책을 꼽는다. 다른 학자들은 중국이나 개발도상국으로부터의 엄청난 자금 유입을 지목하기도 한다. 금융·부동산 가격의 거품 발생에 큰 역할을 한 정치 시스템을 지목하는 학자들도 있다.

요즘 거론되는 보수 규제는 위기를 예방하긴커녕 오히려 금융시스템에 손상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30년 동안 이루어진 기술 혁신과 경제규모 확대는 생산성의 향상과 함께 고소득 계층의 수익을 크게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최고의 은행가와 주식거래인 등이 보수가 많은 회사에서 일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보수에 대한 규제가 도입되면 유능한 인재들이 은행권에서 이탈해 공적 통제가 약한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등으로 옮겨가려 할 것이다.

사실 화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들은 당장 보수에 대한 규제 장치를 도입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정부의 역할은 보수에 대한 규제 강화보다 은행의 자산 건전성을 높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은행의 자산은 자기자본금과 장기채무·단기채무·예금 등으로 구성된다. 베어스턴스와 리먼 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들은 10%에도 못 미치는, 지나치게 적은 자기자본금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정부 감독기관들은 불경기 때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경기가 좋을 때 자기자본금 비율을 높이는 규정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감독기관들은 개별 은행이나 전체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빠질 경우 곧바로 자기자본금으로 전환되는 장기 채권을 발행하도록 은행들에 요구해야 한다. 이런 정책만 제대로 추진됐어도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스티븐 캐플런 시카고 경영대학원 교수
정리=유철종 기자 ⓒ Project Syndicate